허광수 < 한국잡지협회장 >

"우동 한 그릇"은 가난에 찌든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와 가난을 모르고
자란 신세대가 함께 읽어야 할 눈물과 감동의 이야기이다.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이 되면 온가족이 모여 우동을 먹는 풍습이 있다.

어느해 섣달 그믐날 밤, 막 가게 문을 닫으려 할 무렵 "북해정"의 문을
열고 허름한 차림의 한 여인이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와 머뭇거리며
주인에게 묻는다.

"저... 우동 1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주인은 혼연스럽게 1인분에다 우동 반덩어리를 더 넣어준다.

우동 그릇을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고 먹고 있는 세사람의 즐거운 이야기
소리가 카운터까지 희미하게 들린다.

그 이듬해에도 세 모자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나타나 1인분을 시켜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

그 이듬해에는 2인분을 시킨다.

주인은 슬그머니 3인분의 양을 내준다.

그때부터 북해정의 주인은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그들 세 모자를
위해 예약석까지 만들어 놓고 기다리지만 웬일인지 그들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어느해 섣달 그믐날 밤, 건장한 청년 두 사람이
이제 중년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우동집을 찾아온다.

가난을 딛고 꿋꿋이 장성하여 어엿한 사회인이 돼 어렸을 적 우동 1인분을
시켜 세식구가 맛있게 나누어 먹던 추억을 회상하며 우동집 주인의 따뜻한
인정을 잊지 못해 찾아온 것이다.

흔히들 현대를 정서가 메마른 시대, 감동에 목마른 시대라고 한다.

물질만능의 풍요속에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