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기관들에게 외화자금난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외화부도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실정이어서 이젠 존재마저 위협하는
사안이 됐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종금사에서 시중은행으로 외화자금난이 번져가고 있다.

달러화를 확보하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외환시장에 의존하다보니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환율이 오르자 외국인투자자들은 주식을 투매해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국내 금융계를 휩쓸어 버릴 정도로 거센 변혁의 바람이 외화자금에서
비롯되고 있는 셈이다.

금융산업구조조정도 바로 외환쪽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기관들이 현재 봉착한 딜레마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갚아야 할 달러화는 많은데 생겨날 곳이 없다"는 점이다.

무역수지가 여전히 적자인 탓에 해외차입으로 보전해야 하지만 방법이
전무하다.

종금사는 벌써 2개월가량 외환당국의 자금으로 간신히 해외부도를 모면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신용으로 자금을 쓰는 머니마켓은 물론 오버나잇(하루짜리
외화콜)도 끊겼다.

그나마 추진되던 ABS(자산담보부 증권)차입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
등급을 주지 않아 중단된 상황이다.

이 지경에 이르자 해외금융기관들로부터 외화 당좌매월까지 얻어 쓰고 있다.

이돈은 연 10.5%의 고금리가 적용될 뿐 아니라 사실상 써서는 안되는 최후
의 수단이다.

국책은행들마저 종금사와 시중은행에 지원했던 외화자금을 회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대표적인 차입수단이었던 해외CP(기업어음)발행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지난 3일 현재 국책은행들의 해외CP발행 잔액은 산업 17억달러, 기업
9억2천만달러, 수출입 12억3천만달러 등 28억5천만달러.

신규발행이 안되는 탓에 모두 상환부담이 몰려오고 있다.

이들 물량의 만기가 이달말에 집중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금융계는 외화부분이 가져올 파장을 감안, 어떤 형태가 됐건 달러화 확보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취해 왔던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해법에 연연할 시점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해외부도라는 최악의 사태가 눈앞의 현실로 바짝 다가온 만큼 문제해결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외화자금난 해소에 두어져야 한다는게 국제업무
담당자들의 주문이다.

어차피 금융기관 자력차입이 안되는 상황이라면 IMF긴급자금 지원요청이던
한은의 직접 차입이던 결론을 빨리 내려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계는 그러나 외화자금난이 방만한 외화자사 운용에서 비롯된 만큼
부패된 상처를 도려내는 차원에서의 구조조정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기 외화자금을 빌려와 장기로 자산을 운용, 외화자금난의 단초를 제공
했던 종금사들의 경우 자연스럽게 진.퇴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또 시중은행들도 외화자산을 줄이고 해외점포나 현지법인 운용행태를
조정하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걸음 더나아가 이번 외화자금난이 국내 부실자산으로 전이되면서
시중은행 통폐합 논의에도 불을 댕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