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바트화의 폭락으로 촉발된 동남아 통화위기가 홍콩 대만, 그리고
한국을 거쳐 마침내 일본까지 옮겨 붙고 있다.

일본의 주가지수인 닛케이 평균주가는 지난 14일 한때 1만5천엔선이 붕괴돼
2년4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엔화 환율도 달러당 1백26엔을 기록하는
약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엄청난 부실채권에 시달리던 일본 금융기관들의 경영
상태는 더욱 어려워졌으며 일본의 경기회복도 당분간은 힘들 것같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어디까지 번지느냐가 아니라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냐, 그리고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는 문제로 집약되고
있다.

일단 사태를 관망하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도 일본까지 흔들리면 위험
하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우리가 최근의 국제 금융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발도상국의 금융시장 개방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동조현상이 증폭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해 전의 멕시코 사태에 이어 이번의 아시아 금융위기는 국제 금융체제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위기발생이 선진국 뿐만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비롯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국제 자본이동에 따른 유동성편재가 심화되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위기로 올하반기부터 거액의 유동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그 규모가 지난해의 2천8백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는 유동성부족으로 경제성장이 침체되는 반면, 미국은
가뜩이나 과열된 증시에 거품발생이 커져 자칫 지난 20년대의 대공황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셋째로 미국-이라크간의 긴장상태가 장기화되거나 중동지역으로 확산될
경우 원유값이 급등해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국제 금융시장의 뇌관을 강타
함으로써 전세계 경제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당장 원유수입규모가 총수입액의 10%를 넘는 우리경제도 원유값이 급등
하면 가뜩이나 외환사정이 어려운데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끝으로 이번 국제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의 대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통화기금 창설이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동남아지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강화는 당장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구와의
관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경제의 안정을 뒤흔들고 있는 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국내 금융
및 산업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지만 국제 금융불안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관계당국은 사태추이를 주시하고 금융개혁을 포함한
대응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응책마련을 주도해야 할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금융감독기구의
통합문제를 놓고 자중지란을 벌일 때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