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 사회구조, 개인과 집단의 관계, 시대변화와 그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질문....

이런 묵직한 주제의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곳이 독일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서울 동숭씨네마텍에서는15~18일 "뉴저먼시네마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60년대말~70년대의 독일영화를 소개하는데 이어 22일엔 대표적인 독일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개봉한다.

"뉴저먼 시네마"란 60~70년대 독일 영화계에 일었던 신영화운동의 명칭.

1차대전 패배와 나치즘 붕괴등 극심한 혼란을 겪은 독일사회에 대한
반성과 사회구조에 대한 고찰, 그리고 거짓 탐욕 광기 등 인간의 문제를
다룬 무거운 작품이 대부분이다.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깊이있게 다뤄 반체제 성향이 강한 듯하지만
의외로 독일정부의 강력한 후원을 받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들 작품의 대부분은 내무성 산하 청년독일영화관리국 (64년 설립)의
재정지원을 받았으며, 독일 국영텔레비전에서도 이들 감독의 작품 여러편을
합작 제작했다.

이번 영화제 상영작은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8명의 대표작 15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릴리 마를렌", 베르너 헤어조그 "난장이들도
작게 시작했다", 빔 벤더스 "패널티 킥때의 골키퍼의 불안",
마가레타 폰 트로타&볼커 쇨렌도르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알렉산더 클루게" 서커스단의 재주꾼" 등 제목은 귀에 익지만 쉽게 접할수
없던 작품들이다.

"삶의 기호" "패널티킥때의 골키퍼의 불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등 7편에는 한글자막, 나머지에는 영어자막이 붙는다.

신분때문에 주변사람들과 융화되지 못하다가 아내의 부정을 안뒤
자살하는 남자 (사계절의 상인), 우연히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뒤
우여곡절에 휘말리다가 살인까지 하는 여성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등 편견과 통념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그 불합리성을
비판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뉴저먼 시네마의 주요감독 파스빈더의
대표작 (74년)으로 칸영화제 비평가상을 받았다.

50대후반 독일여성과 20년연하 아랍노동자의 사랑이라는 극단적 설정을
통해 독일의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와 소외계층의 외로움을 그렸다.

아랍인의 독일어를 못알아듣는 척 외면하는 가게주인, 냉랭하게 쏘아보는
레스토랑 웨이터, 아랍인과 결혼하자 공공연히 따돌리는 독일인 직장동료에
대한 묘사가 놀랍도록 냉정하고 사실적이다.

자기 치부를 이토록 매섭게 비판할수 있는 힘이 바로 독일의 저력인 듯.

15일에는 오스트리아영화 "퍼니게임" (감독 미카엘 하네케)이 개봉된다.

휴가를 즐기러 별장에 온 가족에게 닥치는 폭력과 살인사건을 그린
영화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감독이 만들어내는 공포 분위기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훨씬 지능적이라는 평.

올해 칸 영화제 본선 진출작이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