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은 지코치에게 사업상 자주 여행하는 것이라고 속이고 그가 프로를
딸때까지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지코치는 그녀가 전보다 더 세련된 연기로 자기를 후원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골프에만 전념하면서 지난 시즌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결사적이었다.

금번 시즌에는 실로 3천3백36대1의 확률로 골프고시를 치르고 있다.

"얘, 너 그 골퍼하고는 정말 끝낸 거냐?"

김치수는 아무래도 딸의 진실이 두려워서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어차피 지영웅과 결혼해서 살 수 없는 입장이라면 영신도 아버지의
신경을 건드릴 필요가 없고 또 지영웅의 안전을 위해 아버지에게 절대
복종하고 있다.

그런데 왜 자꾸 결혼날짜를 늦출까? 김치수는 의심이 들었다.

"아버지, 결혼은 내가 하고 싶은 날 할 거라구요.

적어도 크리스마스전까지는 할 테니 너무 걱정마세요.

저는 평생 아버지의 착한 딸로 살 거예요"

영신은 지영웅이 프로를 땄을때 백명우와 결혼식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영웅은 미친 듯이 날뛸 것이다.

동경이나 어디 외국에서 결혼식을 올려야겠다.

쥐도 새도 모르게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외국에 오래 머물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만 계획을 짜놓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백명우와 결혼의 신성을 위해서도 필요했고,
지코치의 앞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 같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오면 언제나 제일 먼저 지코치가 있는 대성리의
빌라에 전화를 넣는다.

오늘도 연습에서 돌아와 샤워를 마친 지영웅은 모레 있을 시합을 위해
그녀를 못 만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사뭇 곧 죽을 것 같이 그립다.

지영웅에게 핸드폰을 날린 영신은 먼저 특유의 웃음을 쿡쿡 웃으면서
인사를 보낸다.

"드디어 모레로 시합날이 다가왔지요?"

"어디 있는 거야?"

"청담동 집에요"

"여기 와줘. 10분만 보고나면 살 것 같아. 응?"

그의 음성은 정력적이고 힘차다.

그녀는 안심하면서 눈물이 글썽해진다.

"너무 건강한 목소리예요. 안심이야"

"아냐. 자기가 보고 싶어서 나는 죽을 것 같다"

"참아요. 이제 이틀 후면 시합인데"

"내일이 시합날은 아니잖아. 와줘. 그래야 내가 벨트를 딸 수 있어"

"지난번에도 내가 없었으면 이겼어. 다시는 실수하면 안 돼요"

"얼굴만 볼 거야. 그래도 안돼?"

그는 애원한다.

그러나 영신은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정력의 세이브다.

"이번에는 실수하면 안 돼요. 이틀만 참아요"

"제기랄, 출장갔던 일은 잘 되었어?"

"응, 아주 잘 되었어요.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되었어요.

지난 달에 들여온 것도 히트치고 있고, 너무 잘 되고 있어요.

돈 버는 머리 하나는 인정해줘도 돼요.

히히히"

그녀는 또 예의 키득거리는 농섞은 웃음을 웃는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그 웃음소리.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