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형제과회사인 A사의 구매팀장 김부장은 외부전화가 겁난다.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들로부터 걸려오는 가격인상 통첩전화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상요구도 절박해졌을 뿐만아니라 전화횟수도 잦아졌다.

올 여름 환율이 조금씩 오를 조짐을 보일 때만해도 이따금씩 전화가
걸려와 "재료가격을 좀 올려야되지 않겠느냐"는 은근한 요구가 요즘에는
노골적으로 바뀐 것이다.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곡물가공회사들도 죽을 맛이기는 마찬가지다.

식품업체 곡물가공업체 사료업체들이 환율급등으로 겪는 어려움은
원료를 거의 1백% 수입에 의존하는 다른 일반 제조업체들과 다를게 없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은 엘니뇨현상에 따른 국제곡물가 급등이라는 또다른
고통을 안고있다.

게다가 경기불황에 따른 매기부진마저 겹쳐 소비자가격을 올리기도 힘든
현실이다.

2중.3중고를 겪고있는 셈이다.

더욱이 앞으로도 환율이 쉽게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않는데다 엘니뇨여파에
따른 가격인상이 내년초에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돼 이들 업체들은 불안에
떨고있다.

밀 원당을 들여와 밀가루 설탕으로 가공해 식품업체들에 판매하는 제일제당
대한제분등 1차곡물가공회사들은 환율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율인상이 원재료비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데다 곡물, 원당의 구입대금
결제조건이 후불제(일명 유산스)여서 3-6개월전에 구입한 물품대금의
환차손까지 걱정해야할 처지다.

이에따라 한국네슬레는 올들어서만도 3차례나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현상이
벌어지고있다.

네슬레는 외국기업으로 정부눈치를 덜보지만 국내업체들은 가격을 즉각
반영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밀가루 설탕같은 곡물은 물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품목이어서
물가당국의 견제를 심하게 받고있기 때문이다.

같은 커피업체이면서 국내업체인 동서식품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올들어
한번밖에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

식품업체들은 지난주들어 원료공급업체로부터 가격을 올려달라는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과자류의 경우 소비자가격을 자주 올릴 수도없는데다 마진이 적어
원료회사들의 가격인상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실정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나마 롯데제과 해태제과같이 큰 회사들은 협상력이 있는데다 재고가
있어 버틸 수있으나 중소업체들은 원료회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않을
수없는 입장이다.

식품회사들은 지난 7월 인상한 재료가격을 적용하고있어 연말까지는
별도의 인상없이 버틴다는 계획들을 세워두고있으나 내년초에는 소비자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있다.

콩을 가공한 식용유의 경우는 현재 판매가격이 환율 8백70선에서 결정돼
최근 환율요인만으로도 16.4%나 올려야하고 국제 대두가격인상분까지
합치면 무려 47%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 식품업체들은 최근 소비시장이 워낙 위축돼 가격을 올릴 경우
외국 수입제품들에게 시장을 잠식당할 우려마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다.

배합사료의 경우 많은 가공과정을 거치지않은 상태로 판매되기 때문에
원자재가격과 환율변동폭은 고스란히 판매가에 전가된다.

예컨대 환율이 10원 오르거나 내리면 배합사료가격은 0.7%나 오르내리게
된다.

사료회사들은 지난 8월 1.75%오른 이후의 환율인상과 곡물가 급등요인
만으로도 4.9%의 인상요인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료회사들도 축산농가의 어려움과 경쟁격화 때문에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원가압박을 받고 있는 심품 곡물가공 사료회사들은 이미 확보해
놓은 재고물량으로 최대한 버텨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환율 곡물가격 전망이 불투명해 국내 제품가격 동결과 이에따른
적자를 당분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다.

<김광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