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리에 끝난 지금 충무로는 요즘 날씨만큼이나
썰렁하다.

큰 잔치를 치른 뒤 끝에 오는 허전함이 아니라 정작 잔치를 벌인 주최국의
작품이 이렇다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자책감과 더불어 한국영화 제작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식어 있기 때문이다.

올해초부터 "인샬라" "지상만가" "불새" "용병이반" 등 15억원이상 제작비를
들인 굵직한 흥행성 영화들이 잇달아 실패하고 게다가 작품성을 노린 몇몇
작품도 기대에 못미치자 위기감은 시작됐다.

대부분 데뷔 감독이거나 신진 감독이었기에 실망은 더했다.

그렇지만 올해 전체를 볼때 한국영화가 올해처럼 관객의 사랑을 받은 해도
없었다.

흔히 영화계에서는 한 작품이 서울 관객 10만명을 동원하면 성공작으로
본다.

이는 반드시 경제적 성공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10만명이상의
유료 관객과 공감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대중적으로 작품 인정을 받았다는
뜻에서다.

이런 측면에서 연초부터 "고스트 맘마" 40만명, "깡패수업" 20만명,
"체인지" 18만명, "초록물고기" 20만명 등으로 과거에 없었던 흥행 호조를
보였다.

그후 최근까지 "비트" 45만명, "할렐루야" 40만명, "창" 1백만명, "접속"
1백만명에다가 "산부인과" "나쁜영화" "넘버 3" "미스터 콘돔" 등이 10만명
에서 20만명 가까이 동원했다.

90년대 들어, 아니 아마도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의 해일 것이다.

더욱이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들이 연간 50여편 개봉하는데 여름방학
이나 겨울방학 등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극장에서 개봉함에도 불구하고
서울 관객 1백만명을 넘기 힘들고 대부분 10만명에서 40만명 수준에 머문다.

그런데 미국영화 1편 제작비는 작게는 5천만달러에서 많게는 1억5천만달러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편당 4백억원에서 1천5백억원을 들인 영화다.

한국영화 연간 40여편에 평균제작비 10억원을 곱하여 연간 총제작투자비
4백억원과 같거나 훨씬 많은 액수다.

이에 비해 한국영화는 작품당 제작비가 겨우 6억원에서 많아봤자 15억원
이다.

이러한 문화상품인 영화를 똑같은 관람요금 6천원에, 미국영화 보다 훨씬
불리한 배급 환경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가 저렇듯 선전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고
한국영화에 투자하고 만들고 배급하고 보아주는 관객 모두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자, 이렇다면 한국영화는 안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영화도 연간 수백 수천 편중에서 흥행성 높은 대작들만 골라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다.

또한 영화는 위험성이 높다고들 한다.

흔히 제작비가 10억원이네 15억원이네 하면 그만큼의 현금을 쏟아붓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실내용인 즉슨 비디오판권료 TV판권료 등 대략 6억~8억원에 지방배급
전도금까지 합치면 현금 투자는 4억~5억원에 못미친다.

큰 욕심 안부리고 큰 실책만 없다면 잘 되면 투자한지 1년내에 수억에서
수십억원을 벌고 명예까지 얻는다.

안 되더라도 2억~3억원 수준이다.

이만하면 할만한 사업이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우리의 현재 경제 규모로 미루어볼때 굳이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영화는 문화예술 상품이다.

다른 공업제품처럼 남의 기술 빌려와 하루아침에 경쟁력있는 물건을 만들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영화는 돈만으로 환산할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과 이익이 있다.

한국영화가 사라진 세상을 후대에게 물려주었을때의 참담한 상황을 한번
그려보라.

한국영화를 하는 일은 재미있고 신난다.

그리고 돈도 벌수 있고 명예도 얻고 보람도 있다.

게다가 위험성도 소문보다는 훨씬 적다.

그래서 대기업 창업투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유 자금들이 한국영화와 만나
다양하고 풍성한 작품들로 부산국제영화잔치도 치르고 해외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흥행도 되고 해서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키워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영화는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