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이 새 노동법의 몇몇 쟁점조항을 정부나 기업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노조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신한국당 이해구 정책위의장과 이강희 국회 환경노동위간사등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회의를 갖고 퇴직금 우선변제범위를 정부안 보다 대폭 확대하고
신규 노조 전임자에게도 임금을 지급할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는 것이다.

신한국당은 아마도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득표전략의 하나로 이를 거론하고
있는듯 하지만 이 문제들은 결코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퇴직금 문제만 하더라도 지난 8월 헌법재판소가 퇴직금 우선변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노개위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열띤 토론을
거쳐 간신히 정부안이 마련된 상태이다.

정부안은 우선변제 범위를 노동계와 경영계의 의견을 절충해 헌재판결이후
입사자는 3년, 그 이전 입사자는 8년5개월로 정해놓고 있으며 그 합리성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가 내심 공감하고 있는 터이다.

그런데 갑자기 신한국당이 이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발상이 아닐수 없다.

또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는 지난번 노동법개정당시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민감한 사안이다.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무노동-무임금 원칙과
국제관례에도 어긋날 뿐더러 교섭 상대방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돼
논리적으로 명백한 모순이다.

이때문에 새 노동법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 처벌키로 명문화하고 있다.

다만 노조의 재정형편을 감안해 이를 즉각 금지시키지 못하고 법시행당시의
전임자에 한해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두되 회사측으로부터 급여를 받는
노조전임자 수를 단계적으로 축소해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다수의 회사들이 신규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리가 이처럼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이 신규 전임자에게도 임금을
지급할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새 노동법의 취지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지난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새 노동법은 완벽하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크게 보아 21세기 선진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기본틀로 그동안 각 사업장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비록 퇴직금규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근로기준법을 7개월 만에 재개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 틈을 타 노동관계법의 다른 조항들까지 슬그머니
손질하려는 것은, 아무리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고는 하지만 책임있는
집권여당이 할 일이 아니다.

기업도 근로자도 혹심한 경제불황을 견디느라 모두 자기목소리를 죽이고
있는 판에 신한국당 정책위는 도대체 무엇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긁어부스럼을 만들려 하는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