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가 생기기전까지만 해도 대관령(해발 8백32m)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갯길 중의 하나였다.

"아흔아홉 굽이"라는 말 그대로 산세가 험한 이 고개는 그래서 "울고 넘는
대관령"이었다.

길이 좋아진 요즘의 대관령에선 옛날의 그런 운치를 느낄 수 없다.

주행선과 추월선을 넘나들며 곡예운전을 하는 차량사이를 달리면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날뿐 감상이 낄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질주하는 차들이 점령한 도로에서 한발만 벗어나면 우리조상들이
괴나리 봇짐에 짚신차림으로 걸었던 "사람의 대관령"을 만날 수 있다.

이 오솔길은 특히 가을과 겨울의 경관이 뛰어나다.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과 푸르름을 지키는 녹색의 나무가 조화를 이뤄
한폭의 자연예술작품을 이룬다.

낙엽이 듬뿍 쌓인 늦가을의 오솔길을 걷는 정취도 만만찮다.

겨울이면 설경이 압권이다.

대관령 옛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영동고속도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대관령 휴게소에서 강릉쪽으로
6백~7백m쯤 내려가면 "대관령옛길"이란 돌로 된 비석을 만날수 있다.

이 곳의 이름이 반정(해발 7백30m)으로 강릉으로 내려가는 대관령옛길의
출발점이다.

전망이 좋은 이곳에서는 강릉시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예전엔 이 곳에 주막이 있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며 감상에 젖었던 곳이기도 하다.

도로에서 벗어나 몇발 내려가면 삭막한 콘크리트와 쇳덩어리는 완전히
사라지고 수백년전의 옛길이 여행객을 맞아준다.

울창한 산림은 이내 해를 가리고 황토빛이 오른 수백년 묵은 노송들 사이로
난 길은 어른 두세명이 나란히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해 이 곳이 오래된
길임을 알려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길을 다녔는지 오솔길은 멀리서보면 숲사이로
움푹 패여 있다.

길 옆에는 남당 한원진의 시가 걸려 있다.

"새나 다닐 길 하늘에 걸렸다.

이 길을 가는 나도 반공을 걷고 있다..."

고산준령의 허리를 뱀처럼 휘감은 산길을 단풍에 취해 여유자적 걷노라면
여행길의 안전을 비는 돌무덤도 띄엄띄엄 나타나고 길 한곁에서 도토리를
줍는 아이들도 만난다.

계곡이 가까워지면서 길이 갑자기 좁아진다.

그러나 길이 외길이므로 한밤중이 아니면 초행자라도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여기서부터는 계곡의 맑은 물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경치가 수려한 층암계곡의 맑은 물로 땀도 식히고 널찍한 바위에서 청아한
물소리를 들어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고 신선이 따로 없다.

좁은 길이 끝나면서 갑자기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이 곳이 옛주막터로 지금은 주막은 없고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 있다.

안내판에는 이 길이 조선초까지만 해도 사람 한둘이 겨우 다닐 정도였으나
조선 중종때 사람 고형산이 길을 넓혔다고 적혀 있다.

반정서 이곳까지는 2.1km, 여기서 대관령옛길의 강릉쪽 출발점인 대관령
박물관입구(어흘리까지는 1.3km)까지는 2.5km이니 주막터는 대관령옛길의
중간점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대관령옛길의 끝머리엔 대관령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어 여정의 마지막을
의미있게 마무리해준다.

지난 93년 5월에 세워진 이 박물관은 개인박물관으로 1천5백여점의 전통
유물이 전시돼 있다.

대원군이 쓴 현판도 있고 오세창이 만든 병풍도 있다.

그러나 그런 진기품보다는 선조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예쁘고 아담한
전통유물들이 눈길을 끈다.

전시물은 선사유물 불교미술품 민속자료들을 백호방 현무방 토기방 청룡방
쥐직방 우리방 등 6개 방에 나눠 전시하고 있다.

고인물 모양의 외형을 한 대관령박물관 야외전시장엔 수많은 장승들이
제각각 재미있는 표정으로 주변을 지키고 있다가 관람객을 반겨준다.

강릉사람들은 대관령옛길을 어흘리에서 올라가고 서울사람은 반정에서
내려온다.

올라가는 길은 가벼운 등산코스가 되고 내려오는 길은 산보코스다.

단풍 및 주변경치도 감상하고 계곡에서 쉬기도 하며 내려오는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트레킹코스로서의 제반조건을 갖춘데다 회상을 불러 일으키는 대관령옛길은
아직 덜 알려진 탓인지 주말이라도 사람이 붐비지 않아 더욱 좋다.

강릉시에서는 앞으로 대관령옛길도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하니
관광지가 되기전에 찾아가볼 일이다.

[[ 여행메모 ]]

서울에서 대관령정상부근의 대관령휴게소까지는 3시간30분~4시간이 걸린다.

서울~강릉간은 고속버스가 수시로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4시간30분정도.

강릉시내에서 어흘리까지는 시내버스가 다닌다.

하룻밤 자려면 대관령자연휴양림((0391)41-9990)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어흘리마을에서 2km 떨어진 대관령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소나무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곳으로 산막 등의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

금년 6월에 지은 산림문화휴양관은 콘도식 3층 통나무집으로 12개의 방이
모두 국산나무로 마무리된 것이 특징.

산벚나무방과 박달나무방이 있는데 각기 다른 분위기와 향기를 풍긴다.

휴양림은 입장료가 1천원이고 숙박비는 6인 1실 6만원이다.

대관령박물관 옆에 있는 산골막국수집((0391)41-9331)은 막국수전문집으로
메밀로 만든 막국수의 담백한 맛을 즐길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