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1일 현대종합상사 박세용 사장은 서울 계동 본사에서 콘
다바란시 태국 부총리 겸 산업부장관의 예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태국 산업부장관은 태국 남부해안개발과 고속도로 및
공단건설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후 프로젝트 추진역량이
뛰어난 현대가 투자해줄 것을 요청했다.

태국측은 지난 93년 마련된 이 마스터 플랜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경험이 많은 현대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현대는 그룹차원에서 사업타당성을 검토해 프로젝트 참여여부를 곧
결정하기로 했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지난 8월말 비서 한명과 함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를 방문했다.

김회장의 알제리 방문은 알제리 정부측의 집요한 요구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방문목적은 지난 3월 대우와 알제리측이 논의해온 공동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알제리 정부 고위관리들은 대우가 동유럽 등 개도국에서 자동차 및
금융업에 과감하게 투자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자동차 기계장비 해양산업 등에 투자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같은 제의는 수단 모르코 튀니지 등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대우가 검토하고 있는 해외프로젝트의 상당수는 외국 정부나 기업들의
자발적 요구에 따른 것이 태반이라고 (주)대우 관계자는 말했다.

때론 프로젝트 협의과정에서 상대국이 이 사실을 언론에 흘려 국내기업들을
당혹케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프랑스 톰슨사 인수추진과정에서도 알수 있듯 현지 여론에 밀려
프로젝트가 좌절될 때도 있는게 사실이다.

어쨌든 김회장의 출장은 잦을 수밖에 없다.

김회장은 올들어서만 17번의 해외나들이를 했다.

폴란드 체코 미얀마 베트남 인도 중국 스리랑카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루마니아 칠레 페루 에티오피아 에르트리아등이 이미 김회장의
발길이 닿았던 국가이다.

김회장은 9월말까지 1백70일을 해외에서 지냈다고 그룹측은 밝혔다.

대우의 세계경영은 후진국들의 이같은 "구애"로 더욱 가속이 붙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해외의 국가원수 등과 얼굴을 맞대고
경제교류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이 낯선 광경이 아니다.

올들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등은 베이징을 찾아가 중국 정부 대표들을
만나 대형프로젝트를 챙기기도 했다.

물론 그룹 총수들중 앞장서 시장을 개척하는 경우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이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정명예회장은 지난 4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올초까지 휠체어를 타고
해외로 나가 시장개척에 앞장섰다.

지난 1월에는 신문용지 생산공장과 자동차부품공장 건설 등을 위해
중국에 다녀왔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본 브라질 태국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돌며 비즈니스를 했다.

국내 경기가 침체되고 글로벌 경영이 강조되면서 재계 총수와 최고
경영자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해외로 향하고 있다.

특히 시장개척 가능성이 높은 저개발 지역에 대한 대기업총수들의
관심은 어느때보다 높다.

대우에 이어 삼성이 동유럽투자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부 대기업들이 해외본사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여념이 없다.

투자의 개념도 일회성 투자에서 복합투자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로 동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대우의 경우 자동차제조는
물론 판매 AS 금융등 관련분야 모두가 풀세트 방식으로 진출해 예상외의
효과를 봤다.

제조업뿐 아니라 건설 등의 신시장 개척도 활발하다.

국내 건설업체들은 사실상 해외진출의 불모지로 남아있던 중남미지역과
아프리카(케냐 모리타니아) 동유럽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들어 새로 개척한 지역을 보면 경남기업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공항공사를 수주했고 현대건설이 튀니지에서 1억3천8백만달러의
스포츠센터 건립공사를 따냈다.

또 선경건설은 브라질에서 7천만달러규모의 간사유촉매공장 공사를 따내는
등 조금이라도 해외시장을 더 넓히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편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영의 성공여부는 전세계에 분산된 경영자원과
차별화된 경쟁우위를 최단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통합해 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이점에서 글로벌 경영은 단순히 해외사업기지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이제까지의 다국적 기업전략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해외 거점들을 효과적으로 네트워크화함으로써 경영자원의 흐름을
효율화하고 관리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기업들의 활동무대는 전세계이다.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리더기업이 돼야 한다.

그래서 리더가 되기 위한 코리안 파워의 행보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익원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