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의 기업체 부도는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다"는 절박한 하소연이
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다.

바꿔말해 기업체의 추가 도산은 금융기관의 부도로 이어질수 있다는 위기감
이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파이낸스사의 부도를 "강건너 불"로 치부해 버릴수 없게 됐다.

말그대로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시장 경제논리를 통한 구조조정이 강조되는 탓에 대기업 부도 가능성은
내년이 더 높을수 있다.

금융시장 개방이나 개혁일정까지 포함하면 산넘어 산이다.

속병(연쇄도산으로 인한 부실화)는 깊어가는데 안(금융개혁으로 인한 국내
시장 경쟁 격화) 팎(시장 개방)의 도전은 더욱 거세져갈 수밖에 없어서다.

총체적인 금융위기 상황에 다름 아니다.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충당금을 적립하는게 가장 시급하고 적절한 대책"
(금융연구원 양원근 박사)으로 지적된다.

그렇지만 금융기관의 현주소는 자기자본마저도 까먹을수 있는 "집단부실".

은행 종금사 보험 등 너나 할게 없다.

자체 노력으로 문제해결을 기대하기는 도대체가 무리다.

부실채권 정리기금도 부실의 골을 완전히 메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금융계 희망대로 3조5천억원의 덩치가 4번가량 회전하면 14조원 가량의
지원효과가 생겨난다.

이에 비해 기아그룹 등 7개 기업 부도를 감안한 은행권 자산손실규모는
23조5천억원가량(LG경제연구원 추산)에 달한다.

기금으로는 은행정상화에도 힘이 부친다는 얘기다.

구제금융을 통한 부실금융기관 처리에도 한계가 있다.

부실금융기관 정리비용만 키워놓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대우경제연구소 정유신 연구위원은 "미국은 지난 84년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의 지급불능사태때 구제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대형은행은 망하지 않는다
(too big to fail)"는 인식 확산->금융기관들의 고수익 고위험식 경영 선호
->대형은행 파산->저축대부조합 연쇄부도->정리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값비싼
댓가를 치뤄야 했다"고 설명했다.

구제금융은 그대로 국민부담에 귀착된다는 점도 간단치가 않은 문제다.

이같은 상황탓에 "시장경제에 입각한 적자생존 차원의 M&A가 필요한 시점"
(상명대 이명식 교수)으로 지적되고 있다.

퇴출이나 M&A(기업 인수를.합병)를 통해 환부(금융기관 부실)를 도려냄
으로써 금융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현재 금융계는 제일은행이나 종금사들이 특융지원 댓가로 경영권 포기각서를
제출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퇴출이나 인수.합병(M&A)이 본격화될수 있는 토대가 될수 있다는 점에서다.

경영권을 잃지 않으려는 반발이 나올 건 뻔하다.

반대의 정도는 종금사들이 각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확인했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일 수는 없다.

퇴출장치를 갖추는 비용으로 금융기관 몇개의 부도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들릴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게다가 인수.합병을 통한 정리는 비용도 덜 드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미국이 80년대 파산한 2천5백여 금융기관을 정리하는
비용을 대폭 줄일수 있었던 것은 제3자 인수 방법을 적극 활용한 때문"으로
설명했다.

구조적인 처방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모든 금융위험에 대응해 자기자본 적립비율을 정하도록 하고 위험노출도가
일정수준 이상이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강력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장치와 퇴출시스템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면 금융위기는 원천봉쇄할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당국도 더이상 예금보험공사 기능을 수행해서는 안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제 부실 금융기관 처리는 해당기관과 정책당국에 있어 긴박한 결단의
문제로 다가섰다.

<박기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