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갈망하는 지고의 가치이다.

"국제무역의 장"이라고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경을 사이에 두고 전개되는 무역은 역사적으로 완전한 자유가
적용되거나 실천된 일은 거의 없다.

각 나라마다 국제무역의 거래주체인 무역상(기업)의 목적은 이윤극대화에
있기 때문에 이들은 무역이익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국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거래주체간의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나라전체로
볼때 무역의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이들에게 간섭을 하게되고,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었을 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나라 정부끼리 상호
협조하여 "차선책"을 찾게 된다.

그것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불협화음으로 치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역마찰"이며, 다른 용어로 "국제분쟁"이다.

국제무역에는 강자의 논리가 지배한다.

특히 국제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그것을 상실했을 때 이 논리를 구사하는
것이다.

일찍이 영국의 중상주의자인 존 로크는 나라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두가지 뿐이라고 역설했다.

그것은 법과 힘이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법이란 곧 평화를, 힘이란 바로 전쟁을 의미한다.

때문에 무역마찰은 무역전쟁으로 이어진다.

나라내에 분쟁이 발생하면 그것을 조정, 해결할수 있는 법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거나 국제간에는 무역마찰을 조정, 해결할수 있는 강력한 법이 없다.

때문에 힘에 의존한다.

이같은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국제사회에는 강자의 논리만이 지배하므로
무법 무정부 상태로 봐야 할 것이다.

국제적으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해서 평화로운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는 할수 없는 것이다.

최근 가장 우호적이었던 한미간에 과거에는 볼수 없던 격심한 무역마찰이
발생하였다.

그 요인의 주범인 자동차라는 무역문제가 한미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 동안 두 나라의 정부대표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을 위해 전력하였다지만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해 협상은 결렬된 것이다.

협상의 결렬원인은 미국이 끈질기게 요구해 온 "공정무역"을 표방하는
미국의 무역정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공정무역이란 개인이나 국가의 룰에 관련될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국가의 행동에도 관련된다.

기본적으로 룰이든 행동이든 그것이 어느 한 나라에 유리하게 하거나
불리하게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우리 국민에게 인기절정에 있는 월드컵예선전인 축구게임을 예를
들어 국재무역과 비교한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축구선수가 평탄한 경기장(a lcvel playing field)에서
경기진행을 할 경우 공정한 룰과 기회가 똑같이 부여된 상태에서 각 선수가
룰에 따라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특정의 선수에게 불리하게 돼있지 않다.

따라서 각 선수에게 "룰의 공정함"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각 선수들이 경기의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을 이와같은 축구게임에 비교했을때,여기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즉 각 나라에 첫째, "룰"자체가 각 산업에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는가의
여부, 둘째, 각 산업의 능력이 동일한가의 여부, 셋째, 각 산업의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고 있다해도 그 결과에 충분히 납득할수 있는가의 여부등이다.

이처럼 미국의 무역정책에는 공정무역에서 고려될수 없는 각 나라의
경제사정과 입장이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때문에 무역게임은 승패를 가르는 축구게임과는 다르다.

축구는 승리를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탄한 운동장, 공정한 룰과 심판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런 바탕에서 선수는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다.

그러나 무역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면서도 그 균형이 절실히
요구된다.

무역에 참가한 자는 이윤의 극대화에 주력하기때문에 참가국 전체로
보아 무역균형이 이루어지는 한 자유무역이 "최선책"이다.

그렇지만 무역이 전체적으로 불균형한 상태일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무역불균형은 무역마찰을 빚는다.

무역마찰이 생겨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unilateral)보복을 가하고 당하는
나라가 이에 질세라 "역보복"으로 대항한다.

말하자면 "무역전쟁"인 것이다.

이와 같이 무역에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는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기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경우 정부간의 협상이 필요하다.

서로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를 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협상이 기대대로의 결실을 맺지 못했을때 그 공은 세계무역기구
(WTO)로 넘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기구는 국제간에 "룰의 공정함"을 지향하고 또 문제를
다자간으로(multilateral)해결하려는 것은 분명하지만, 두 나라의
욕구를 총족시킬수도 없을 뿐만아니라 충족시켜 주지도 않다.

때문에 무역불균형의 문제를 협상당사국간에 쌍무적으로(bilatcral)
원만하게 풀어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각 나라는 역사적으로 경제발전과정을 달리해 왔기 때문에 각 나라의
산업에 우열의 차이가 확연히 들어나고, 또 그 우열은 각 나라의 노력여하에
따라 뒤바뀌기도 한다.

과거 영국이 스페인을 앞지르고 또 미국이 영국을 앞질렀듯이, 국가간의
무역문제는 복잡하게 얽히고 꼬이면서 각 나라의 산업이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하면서 발전해 왔다.

산업발전이 앞선 나라는 자유무역을 외치지만, 뒤쳐진 나라는 보호무역으로
치닫게 되어 있다.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무역이란 영원한 숙제꺼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국제무역의 장"이라지만 오늘날
경제적으로 한미간의 우호와 공통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서로 깊은
이해와 협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의 시기라고 단정하고 싶다.

따라서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최후의 수단인 "보복"이라는 칼을
내휘두를 것이 아니라 강대국답게 한미 두 나라간에는 물론 세계전체의
무역증진과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더 많은 아량과 포용력을 발휘해야함은
부정할수 없지 않는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