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간외교식 대미국 로비활동 .. 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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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원 <미 오리건주 정부 주한대표부 대표>
나라 안에서는 밤낮없이 12월 대통령선거를 향한 "용들의 경쟁"이
한창인데, 나라밖 미국에서는 급기야 한국의 자동차시장에 대해 통상법
슈퍼301조를 적용하겠다고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이에 맞서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하겠다고 하니, 아마 한-미간의 무역분쟁은 피할수 없는
형국인듯 싶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자 최대 시장인 미국을
상대하는데 다음과 같은 방법은 어떨까.
사실 미국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과연 그들이 우리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하는 점에서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점에서는 최근 한 언론사가 마련한 대통령 출마자와의 TV 토론회
석상에서 어떤 후보가 미국은 한국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아마 제한된 시간 탓에 그 후보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점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 경제가 69-70년대의 절대빈곤을 벗어나 한창 산업화될 무렵 미국
언론들은 앞다투어 "한강의 기적"이니 "제2의 일본"이니, 또는 "한국인이
몰려오고 있다"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때 우리는 특별한 생각없이
기뻐하기만 했다.
사실 이는 기적이 아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한 노력의 결실이며, 이는 그들 미국인들이나 다른
선진국 국민들이 편안히 먹고 즐길 때, 우리는 허기를 달래가며 열심히
일했으며, 월남전 참전의 목숨과 바꾼 대가요, 중동의 뜨거운 사막에서 땀
흘린 대가요, 특히 사업에 종사하는 기업가들도 자기 나이 이상으로 늙어
보일 만큼 밤낮으로 일한 당연한 노력의 결과이다.
게다가 대다수 미국 농민들은 한국이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라는 것을 모른다.
이는 베풀고도 생색내지 않는 우리의 겸양탓이 아니라 홍보 부족이
더 큰 이유다.
어쩌면 로비활동 부족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로비활동이라는 것이 무슨 일이 생겼을때 정부고관이 미국 연방정부
수도인 워싱턴에 황망히 달려가서 저명인사와 악수하고 사진찍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한국판 로비"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이는 미국의 정책 결정과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데서 나온 것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은 철저하게 평범한 유권자들의 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유권자들이 자기 지역 출신 국회 의원들에게
편지 전보 전화 등을 통하여 그 의원들이 의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때
가장 강력하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의 대미 홍보활동이나 또는 로비활동이라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자명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미국 사회의 "바닥"홍보활동을 위한,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못한 훌륭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슬픈 역사의 소산이지만.미국에는 아직도 약2백만명에
달하는 6.25참전 용사들이 있다 한다.
가끔 미국의 어떤 회합이나 파티 석상에서 만나는 그들은 지금도 "김치"
"판문점"등의 한국 말을 또렷하게 기억하며 대부분이 자기 조국 다음으로
한국을 아끼는 친한파 인사들이다.
대부분이 60대 후반인 이들은 연륜이나 경륜으로 보아 모든 분야에 지도급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전쟁의 폐허에서 오늘의 한국을 이룩하는데 우리 한국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이 가는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피와 땀을 흘려 목숨을 걸고 싸운 대가의 보람을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자랑하고 싶어한다.
만일 우리 정부가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여 전쟁의 폐허속에 열심히 일한
덕에 이제 이만큼이라도 살게 됐다는 화보와 함께 국가원수의 이름으로
그들의 지난날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한다는 개인적인 편지 한장씩을
보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그들은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이요, 나아가 한국이 곤경에
처하여 미국의 이해나 도움이 필요할 때 성심껏 도와주고 싶을 것임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들에게는 대개의 경우 아직도 부모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부인 아들
딸 며느리 사위도 있을 것이며, 손자 손녀는 곧 유권자가 되리라.
따지고 보면 한국 편이 돼줄수 있는 유권자의 수는 엄청나게 많을수
있다는데 우리 자신도 놀랄 것이다.
그들이 만약 자기네 지역구 의원들에게 한국에 불리한 입장을 취하지
말라고 편지 등을 보낸다고 상상해보자.아마 그 효과는 가히 엄청날 것이다.
비용도 우편료만 들이면 되니 가장 경제적인 로비및 홍보활동이며 고마운
옛 친구에게 어려운 때의 고마움을 전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누가 이 일을 불법이고 음성적인 로비 활동이라 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6.25 전쟁직후인 1955년 10월 맨처음 미국
오리건주 남쪽 작은 도시에 살던 해리 홀트(Harry Holt)씨가 8명의
혼혈고아 입양부터 시작한 해외 입양아 수가 전세계에 근 13만4천여명에
달한다.
그들의 효과적인 활용방법과 아울러 6.25참전 16개국 용사들, 한국에
근무한 적이 있는 주한 미군 용사들, 그리고 평화 봉사단원으로 나름대로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이들을, 실로 우리 고유의 인적
자산으로 귀하에 여겨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아마 그들은 기꺼이 우리의 훌륭한 민간 외교관이요, 우리 제품의 변함없는
애용자가 되는 것을 마다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8일자).
나라 안에서는 밤낮없이 12월 대통령선거를 향한 "용들의 경쟁"이
한창인데, 나라밖 미국에서는 급기야 한국의 자동차시장에 대해 통상법
슈퍼301조를 적용하겠다고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이에 맞서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하겠다고 하니, 아마 한-미간의 무역분쟁은 피할수 없는
형국인듯 싶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자 최대 시장인 미국을
상대하는데 다음과 같은 방법은 어떨까.
사실 미국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과연 그들이 우리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하는 점에서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점에서는 최근 한 언론사가 마련한 대통령 출마자와의 TV 토론회
석상에서 어떤 후보가 미국은 한국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아마 제한된 시간 탓에 그 후보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점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 경제가 69-70년대의 절대빈곤을 벗어나 한창 산업화될 무렵 미국
언론들은 앞다투어 "한강의 기적"이니 "제2의 일본"이니, 또는 "한국인이
몰려오고 있다"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때 우리는 특별한 생각없이
기뻐하기만 했다.
사실 이는 기적이 아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한 노력의 결실이며, 이는 그들 미국인들이나 다른
선진국 국민들이 편안히 먹고 즐길 때, 우리는 허기를 달래가며 열심히
일했으며, 월남전 참전의 목숨과 바꾼 대가요, 중동의 뜨거운 사막에서 땀
흘린 대가요, 특히 사업에 종사하는 기업가들도 자기 나이 이상으로 늙어
보일 만큼 밤낮으로 일한 당연한 노력의 결과이다.
게다가 대다수 미국 농민들은 한국이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라는 것을 모른다.
이는 베풀고도 생색내지 않는 우리의 겸양탓이 아니라 홍보 부족이
더 큰 이유다.
어쩌면 로비활동 부족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로비활동이라는 것이 무슨 일이 생겼을때 정부고관이 미국 연방정부
수도인 워싱턴에 황망히 달려가서 저명인사와 악수하고 사진찍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한국판 로비"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이는 미국의 정책 결정과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데서 나온 것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은 철저하게 평범한 유권자들의 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유권자들이 자기 지역 출신 국회 의원들에게
편지 전보 전화 등을 통하여 그 의원들이 의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때
가장 강력하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의 대미 홍보활동이나 또는 로비활동이라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자명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미국 사회의 "바닥"홍보활동을 위한,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못한 훌륭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슬픈 역사의 소산이지만.미국에는 아직도 약2백만명에
달하는 6.25참전 용사들이 있다 한다.
가끔 미국의 어떤 회합이나 파티 석상에서 만나는 그들은 지금도 "김치"
"판문점"등의 한국 말을 또렷하게 기억하며 대부분이 자기 조국 다음으로
한국을 아끼는 친한파 인사들이다.
대부분이 60대 후반인 이들은 연륜이나 경륜으로 보아 모든 분야에 지도급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전쟁의 폐허에서 오늘의 한국을 이룩하는데 우리 한국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이 가는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피와 땀을 흘려 목숨을 걸고 싸운 대가의 보람을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자랑하고 싶어한다.
만일 우리 정부가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여 전쟁의 폐허속에 열심히 일한
덕에 이제 이만큼이라도 살게 됐다는 화보와 함께 국가원수의 이름으로
그들의 지난날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한다는 개인적인 편지 한장씩을
보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그들은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이요, 나아가 한국이 곤경에
처하여 미국의 이해나 도움이 필요할 때 성심껏 도와주고 싶을 것임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들에게는 대개의 경우 아직도 부모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부인 아들
딸 며느리 사위도 있을 것이며, 손자 손녀는 곧 유권자가 되리라.
따지고 보면 한국 편이 돼줄수 있는 유권자의 수는 엄청나게 많을수
있다는데 우리 자신도 놀랄 것이다.
그들이 만약 자기네 지역구 의원들에게 한국에 불리한 입장을 취하지
말라고 편지 등을 보낸다고 상상해보자.아마 그 효과는 가히 엄청날 것이다.
비용도 우편료만 들이면 되니 가장 경제적인 로비및 홍보활동이며 고마운
옛 친구에게 어려운 때의 고마움을 전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누가 이 일을 불법이고 음성적인 로비 활동이라 하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6.25 전쟁직후인 1955년 10월 맨처음 미국
오리건주 남쪽 작은 도시에 살던 해리 홀트(Harry Holt)씨가 8명의
혼혈고아 입양부터 시작한 해외 입양아 수가 전세계에 근 13만4천여명에
달한다.
그들의 효과적인 활용방법과 아울러 6.25참전 16개국 용사들, 한국에
근무한 적이 있는 주한 미군 용사들, 그리고 평화 봉사단원으로 나름대로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이들을, 실로 우리 고유의 인적
자산으로 귀하에 여겨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아마 그들은 기꺼이 우리의 훌륭한 민간 외교관이요, 우리 제품의 변함없는
애용자가 되는 것을 마다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