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이 6일 "화의 강행" 입장을 채권단에 공식 통보하고 채권단도
"채권단이 먼저 법정관리를 신청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기아그룹은 일단 법원의 주도아래 화의절차를 밟게 됐다.

채권단은 그러나 법정관리가 기아자동차를 살리는데 가장 낫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화의가 본격적으로 개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기아사태는 기아그룹이 외부자금 지원없이 얼마나 공장을 가동
할수 있느냐와 최근 중재에 나선 정치권의 움직임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게 됐다.

만일 기아의 "홀로서기"가 한달을 버티지 못하거나 정치권의 중재가 빠른
시일내에 결실을 맺지 못할 경우 기아사태는 채권단과 정부의 의도대로
법정관리로 판가름날 공산이 높은 편이다.

<> 채권단 입장 =기아그룹 채권금융단은 기아그룹의 화의강행 통보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화의의 경우 추가자금지원을 할수 없는데다 그럴 경우 기아가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없어 채권확보도 어렵다는 논리에서다.

채권단은 그러나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먼저 신청하지는 않을 방침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기아가 자체자금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하거나 공장가동 중단 등으로
백기항복하는 것을 지켜볼뿐 채권단이 나서서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아그룹의 형편상 외부자금 지원없이는 버티는데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으며 이에따라 기아그룹 계열사들은 순차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할수
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말하자면 기아의 백기항복을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특히 사정이 여의치않으면 채권단이 먼저 법정관리
를 신청할수도 있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류시열 제일은행장은 이와관련, "현재로선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먼저 신청
하지는 않겠다"면서도 "기아가 화의강행을 선택한 이상 추가자금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아의 화의가 완전히 물건너갔다고 단정할수는 없다.

법원은 앞으로 1백44개의 채권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화의동의여부를 묻게
된다.

채권단은 화의동의여부는 개별 채권기관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채권기관들이 조건부 화의동의의사를 표명한다면 기아의
화의개시는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질수도 있다.

특히 정치권이 화의가 낫다는 생각아래 중재에 나서고 있어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법원이 1백44개나 되는 금융기관으로부터 화의동의여부를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수 밖에 없다.

만일 그전에 기아가 "협력업체 연쇄부도-부품공급차질-기아자동차 공장
가동중단"이라는 사태에 직면하면 채권단이 먼저 법정관리를 신청할수도
있어 기아의 시간벌기 노력도 물거품이 될 거라는게 채권단의 중론이다.

<> 기아측 입장 =기아그룹이 6일 채권단에 화의 고수방침을 공식 통보함
으로써 기아는 이제 자력갱생의 길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게 됐다.

자금 지원없이 홀로서기를 이뤄내야 할 처지다.

현재 기아자동차 "기름탱크"의 눈금은 "제로" 일보직전에 와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매달 1천5백억원에 달하는 수요자금융과 1천억원의
수출환어음(D/A) 매입이 지난 7월말이후 막혀 있는데다 최근에는 협력업체의
진성어음 할인마저 완전히 끊겼다.

"캐시 플로"라는 말조차 의미를 상실한 실정이다.

게다가 7, 8월에 4만2천~4만5천원대를 기록했던 차 판매 실적도 지난달에는
3만2천대로 뚝 떨어지는 등 설상가상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만일 이런 상황이 지속돼 협력업체의 연쇄부도로 공장이 서게 되면 그간의
모든 자구노력은 물거품이 돼버릴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기아 경영진은 "최대 생산, 최대 판매"를 통해 한달에 5천억원은
거둬들일수 있으며 이 정도면 법원의 화의결정 때까지 약 3개월간은 충분히
꾸려나갈수 있다고 말한다.

송병남 경영혁신기획단 사장은 "아무런 지원도 없이 2개월 이상을 넘겼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판매를 극대화하면 무리없이 지낼수 있다"고 밝혔다.

협력업체 문제에 대해서도 부품대금 결제로 최우선 처리해 가동 중단과
같은 극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말뒤에는 "채권단이 수요자금융 재개, 기아발행 어음할인,
수출여신 확대 등 차 판매와 관련된 금융거래는 정상적으로 해줘야 한다"는
호소가 꼭 붙어다닌다.

그만큼 홀로서기가 버겹다는 얘기이다.

< 하영춘.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