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슈퍼 301조 연례검토 시한을 앞두고 숨가쁘게 진행되던 한.미
자동차 협상이 결국 타결되지 못하고 양국 통상관계에 80년대 이후 최고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의 자존심으로 미국내 최대의 압력단체인 미국 자동차
제조업자협회(AAMA)의 압력을 미행정부가 수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되어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이 한국의 자동차 분야를 PFCP로 지정한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과거의 통상압력과는 사뭇 다른 측면이 있다.

우선 90년대들어 미국경제가 유례없는 호조를 누리고 있고 한.미 양국간
교역도 80년대와는 달리 우리의 역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저가 공산품으로부터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반덤핑등 수입규제가 문제였던 80년대초까지나 공정무역을 앞세운 시장개방
압력이 고조된 80년대 이후는 모두 미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시기였다.

두번째는 단순히 국경진입장벽을 허물라는 것이 아니라 내국세나 할부금융
제도 등 국내에 들어와서 영업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벽이라면 통관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관세나 비관세장벽으로 알았던
과거의 관점에서 본다면 내정간섭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다.

그리고 금번 USTR의 보도자료에서도 나타났듯이 단순히 우리 국내시장
개방이 목적이 아니라 세계적 자동차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축 우려가 배경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진전되면서 미국의 통상압력이 이제 단순히 자유
공정무역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영의 관점에서 세계적 생산량
의 조정까지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WTO 제소로 맞서겠다는 우리 정부의 태도도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과거에는 최대시장을 가진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되 어떻게 하면
최대한 유예를 받을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러나 이제 우리 시장도 충분히 개방되었고, 제반제도가 국제기준에
합치한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다 대등한 관계정립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하면 미국의 입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향후 양국 통상관계가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자명해진다.

우리의 대미 무역적자가 누증되고 있다고 미국의 요구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전체적 무역수지에 상관없이 분야별 형평을 요구해 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내 통상마찰의 근원지는 행정부가 아니라 업계이며, 통상
마찰의 근원적 해결은 이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길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다만 이러한 협력은 과거와 달리 세계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90년대 들어와 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 경기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이
대미적자가 누증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파상적인 통상압력을 가해 오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미국내에는 지난 7년간 계속해서 호황을 누린 경기가 내년부터
하강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과 최근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평가절상
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무역수지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동남아의 통화위기가 확산될 경우 미국의 대동남아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여 내년에는 무역적자가 올해의 1천9백억달러에서 3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미의회에 계류된 신속협상처리 법안의 지지확보를 위해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강경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도 이번 조치의 배경의
하나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가 다극화했다고는 하지만, 세계무대의 주연으로서 미국의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20세기 전반을 통해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미국의 가치, 합리주의와
창의력을 바탕으로 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기업가 정신을 보더라도 향후
상당 기간 동안 미국이 누리는 세계 무대에서의 주도적 위치는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앞으로 한.미 양국통상관계의 우호적인 발전을 위해 미국의 전통적인
리더십과 냉정을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