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마찰이 갈수록 격화되는 것은 통상문제를 보는 양측의 기본
시각이 판이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자동차시장에 대해 슈퍼 301조를 발동하면서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므로 농산물식품 화장품 철강 등 미국의 관심분야
전반에 개방확대를 유도해야 한다"고 결론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의 빅3(포드 크라이슬러 GM)를 비롯한 미국 업계입장에선 한국은
확실히 군침도는 시장이다.

인구나 소득 및 소비수준에 있어 서유럽과 일본을 제외하고 한국만한
시장도 드물다.

자동차의 경우 한국의 내수규모는 세계 7위인데 시장개방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동아시아를 마지막 남은 시장으로 간주하고 있는 미국 업체들로선 안달할
수밖에 없다.

미국측이 이번에 정부는 물론 이례적으로 상하원까지 나서 자동차협상을
강경일변도로 밀어부친 것은 미국 업계의 한국시장에 대한 조바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선진국시장"으로 바뀐 이상
미국의 시장개방압력은 자동차에 이어 다른 분야에도 같은 양상으로 되풀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를 증명하듯 미국은 위스키에서 소비절약캠페인 등 민간단체의 자발적인
활동까지 통상이슈화할 정도로 한국시장개방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에반해 우리측은 미국과의 전반적인 교역상황을 전제로 개별통상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우리측의 기본입장은 "한국과의 교역에서 연간 1백억달러이상 흑자를 내는
미국이 자동차 반도체 가전제품 등 한국경제의 사활이 걸린 분야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미국도 한국과의 교역에서 대규모 적자를 냈던 지난 80년대는 "포괄협상"을
줄기차게 주장했었다.

이제 처지가 바뀌어졌지만 미국은 한국의 "포괄협상"내지는 "정황참작론"을
무시하고 "케이스별 협상"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측은 정부교체기인데다 기아사태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의
경제상황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밀어부치식 통상협상을 펴고 있다.

이런 것들이 한국측을 격분시키고 "매건마다 WTO에 제소하는 등 강경대응
한다"는 우리측의 방침을 굳히게 만들고 있다.

자동차 협상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서로 시각차를 철저하게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양국 통상협상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반도체 D램 = 미국 정부는 한국업체들의 덤핑혐의가 없다는 것을 인정
하면서도 자국업체(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한국업체들에 반덤핑규제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이에대해 한국업체들은 지난 8월 하순에 미국 국제무역법원(ITC)에 이
문제를 불공정행위로 제소해놓았고 우리 정부는 별도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강경대응중이다.


<>반도체 S램 = 역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제소로 미국정부는 지난달
24일 삼성전자에 1.59%, 현대전자에 3.38%, LG반도체에 55.36%의 덤핑예비
판정을 내렸다.

이에대해 관련업체는 본판정에서 2%미만의 극소마진판정(무혐의판정)을
받아내기위해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컬러TV = 삼성전자의 경우 6년 연속 미소판정을 받은데 이어 이후
6년간은 아예 미국에 대한 직수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미국은 삼성전자에 대해 덤핑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3년동안 0.5% 이하의 미소마진 판정을 받을
경우 반덤핑 규제를 철회할 수 있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측은 이를 WTO의 반덤핑규정 위반으로 보고 WTO에 제소해놓고 있다.


<>쇠고기 = 글릭먼 미국 농무장관은 30일(현지시간) 박건우 주미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미국 축산협회 등이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줄이기위해
O-157균 검출문제를 이용하지 않도록 미국 자체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농민단체 등은 위생문제로 인한 쇠고기파동을 한국이 통상정책
차원에서 접근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정부는 자국 농민을 의식한 나머지 직접 조사에 나서는 등 적극 대응할
태세이나 한국정부는 이에대해 부정적이어서 마찰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한보철강문제 = 지난 1월18일 미국 강관수입자협의회(CPTI)와 3개제철사
(걸프스테이트, 웨이톤, 제네바)는 한보철강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이
WTO의 보조금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미국정부에 WTO에 제소할 것을 요구
중이다.

우리정부는 한보철강의 대미수출이 전무한 상태에서 통상시비부터 걸어오는
것은 부당하고 금융대출 등에서 정부 직접개입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주세제도 = 미국은 지난 10일 EU(유럽연합)과 함께 위스키 브랜디
보드카 등 수입술의 세율이 소주 세율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불공정행위로
지목, WTO에 제소했다.

한국측은 소주와 위스키를 같은 종류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고 세제는
입법부 소관이라는 점 등을 들어 미국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양측은 오는 8일과 9일 제네바에서 반도체 컬러TV와 이 문제를 놓고 협상에
착수한다.


<>지적재산권보호 = 지난 4월30일 국별 지재권 연례재심때 한국은 지난
5년간 우선감시대상국(PWL)에서 감시대상국(WL)으로 하향조정됐다.

그러나 미국은 내년에 특허법원 설치, 상표법 및 의장법 개정, 상표의
국제분류시스템 채택,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제도 개선 등
추가조치를 계속 요구중이다.

미국측은 이같은 요구가 가시화되지 않으면 다시 우선감시대상국(PWL)으로
상향조정할 태세다.

< 이동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