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오던 레저용 차량(RV : Recreation Vehicle)의
인기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90년대들어 RV는 무서운 속도로 미국시장의 자동차 판매순위를 휩쓸어
나갔다.

도시인들 사이에 레저붐이 일면서 활동성이 뛰어난 밴 픽업 지프등의
수요가 폭주했기 때문.

거침없이 솟구치는 인기에 힘입어 얼마안가 RV는 도심 깊숙한 곳까지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이같은 판매 증가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면서 7년간
이어져온 인기행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올 상반기중 지프 픽업 밴등 RV의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가
늘었다.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감소한데 비하면 나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91년부터 96년사이의 연평균 판매신장률 9.8%에 비하면 형편없는
성적.

워즈 오토모티브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니밴과 픽업트럭은 지금까지
각각 2.3%, 3.4%씩 판매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인 넥스트트렌드는 상당수의 소비자들이 지프스타일에서
정통세단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녀를 웬만큼 키운 가정일수록 운전석에 "기어올라야" 하는 지프보다
안락하고 푹신한 시트에 사뿐히 몸을 내맡길 수 있는 고급 승용차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

전후 출산붐속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들이 중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성향은 점점 더할 것이라는게 이 회사의 예상이다.

컨설팅회사인 AT커니의 제이 하크턴 이사(자동차 시장 분석팀)도 RV의
시대가 끝나간다고 단언한다.

그는 "주말이면 RV를 몰고 교외로 나가는데 열광하던 여피족들이 이제
너도나도 끌고 다니는 RV의 매력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RV의 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여피족의 애정이 시들해졌으니 RV의
호시절은 막을 내리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공급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도 RV의 미래에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10년전 31.7%에 불과했던 RV의 시장점유율은 현재 44.5%까지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레저용 차량이 차지할 수 있는 시장점유율을 46%정도로
잡고 있다.

성장의 여지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일 미국에서 RV열풍이 사그라질 경우 자동차 업계에는 만만찮은 타격이
예상된다.

그동안 이들은 RV 생산공장을 풀가동하고도 모자라 생산시설을 줄기차게
늘려왔다.

지금도 더 크고 더 비싼 RV를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는
터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대로 간다면 내년께는 설비과잉 상태가 닥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내년까지 북미지역의 픽업트럭 생산능력은 올해보다 6.8%가 늘어난
연간 8백80만대.

시장의 소화능력보다 17만대이상 초과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RV의 인기가 건재하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포드의 신형 RV인 익스피디션이나 초호화 링컨 네비게이터는 여전히
잘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포드와 크라이슬러등이 지프 판매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인기추락에 대한 우려를 증명한다.

작년만해도 이들 모델은 3만달러(2천7백만원)를 웃도는 "완전 정찰제"로
팔려나갔다.

물론 소비자들이야 애가 탈리 없다.

안그래도 RV의 가격은 지나치게 비싸다고 지적됐었다.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저 느긋이 지켜보면 된다는 얘기다.

< 김혜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