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연 < 고려대 국문과 4학년 >

학생들을 압도해 존경을 한몸에 받는 교수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범접할 수 없을 만한 양의 지식과 앞날을 훤히 내다보는 듯한
통찰력을 가진 유형이며 다른 하나는 전공분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강의에
대한 정열을 가진 유형이다.

물론 두가지를 두루 겸비한 교수도 있지만 4년째 대학생활을 해오면서
만난 분들은 아쉽게도 대부분 전자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곽연 선생님의 "현대음악의 이해"를 수강한 것은 지난 96학년도 2학기였다.

신입생때부터 선배들로부터 "현대음악의 이해를 수강하지 않으면 고려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수강을 시작했다.

강의 첫시간, 강의실문을 열어젖히는 선생님은 외모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작달막한 키, 적당히 볼륨있게 튀어나온 아랫배, 반쯤 벗겨진 앞이마.

음악가에 대한 내 선입견을 더욱 무참히 깨버린 것은 선생님의 강의진행
이었다.

2시간 내내 칠판에서 피아노로 학생들사이로 종횡무진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강의에서 처음으로 부른 노래는 "고향의 봄"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주장이었다.

특히 한소절씩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들려준 낯익은 트로트가요 대부분이
일제시대의 뽕짝리듬에 기초한다는 것도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우리는 그 학기에 "우리겨레의 하나됨을 위한 음악"을 주제로 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분단 반세기가 되어가는 지금, 우리 민족이 통일된 후 요구될 가장 효과
적인 정서적 통일은 바로 가장 원초적 교감수단인 음악을 통해 이뤄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며 종강에 임했다.

현대음악의 이해는 4년간에 걸쳐들은 강의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두시간 내내 학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갖게 해줬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