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은 8일 의원.시도지부장 위원장 연석회의를 열어 이회창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단합할 것을 결의코자 했으나 비주류측이 후보교체론을 주장
하며 이에 반발, 당내 주류와 비주류간 갈등이 한층 더 격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오전 10시30분에 시작된 이날 연석회의에서 강삼재 사무총장 등 주류측은
민주계의 공세를 예상, 회의를 비공개로 강행하려 하자 이인제 경기지사 등
비주류측은 회의공개를 요구하며 당지도부와 대립했다.

유성환 위원장과 심상준 위원장은 "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의문을 채택
하거나 합의되지 않은 사항을 발표해서는 안된다"며 반발했으나 주루측은
강삼재 총장의 비공개 고수와 일방적인 지지박수로 비공개를 관철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자유토론 내용.

<> 이재오(서울 은평을) 의원 =경선 직후 이회창 대표 지지율이 40%이상까지
올라가 대선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지만 지금은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엷어져 가고 있다.

민심이 우리 당을 떠나 있다.

안양 만안 보선패배를 통해 드러났다.

이대표에겐 5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

두 아들의 병역면제로 인한 도덕성, 역사 바로세우기 등 정강정책을 임의적
으로 변경하려는 것, 지도력 부재, 낙선진영에 대한 포용성,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대표의 이미지이다.

대표는 의원직을 사퇴해 불퇴전의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추석연휴가 지나도 승리의 가능성이 희박하면 다른 결단이 필요하다.

<> 이원형(대구 수성갑) 위원장 =경선은 당원의 주권행사이다.

합법적인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를 교체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경선을 승복하는 민주적 정신을 가져야 민주정당이 된다.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단합해 대선승리를 위해 노력하자.

<> 이환의(광주 서) 위원장 =우리 호남 대의원들은 경선때 이대표를
지지했었다.

그 이유는 김대중 총재에게 정권을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총재는 광주학살 원흉인 노태우씨에게 20억원을 받은 인물이다.

지금의 사태는 이대표 아들문제가 원천적이지만 내부에서 서로 비난하고
융합하기 못하는 콩가루 집안이 된게 주된 원인이다.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단결해 대선에서 승리하자.

<> 유성환(대구 중) 위원장 =정당의 존립목적은 집권이다.

신한국당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지만 인기 회복은 불확실하다.

인기 하락의 원인인 대표의 두 아들 군문제는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

군 사병들도 비웃고 있다.

이회창 후보문제를 제고해야 한다.

군에 나설 빌미를 제공해선 안된다.

이대표는 당선가능성이 없다.

이대표에게 후보사퇴의 결단을 촉구한다.

국민여론에 따라 살신성인의 자세로 후보를 사퇴하고 전당대회를 통해
후보를 다시 선출해야 한다.

<> 백승홍(대구 서갑) 위원장 =김대통령이 경선과정에서 엄정중립의 자세를
보였고 경선후에는 이대표를 중심으로 결속하라고 지시했다.

이대표론 안된다고 일부 인사들이 부채질하고 있는데 이것을 대구시민들은
당이 분란에 빠져 우리 스스로 망해 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보교체설, 낙마설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 박희부(충남 연기) 의원 =대선까지 아직 3개월이 남아 있다.

인기는 항상 변하는 것이다.

우리 뭉쳐서 대표의 병역문제를 대처하다.

나는 민주계 인데 누가 마음대로 민주계를 자처하며 후보교체론을 주장하고
있느냐.

대표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총재인 김대통령의 의중을 따르는게 민주계의
도리이다.

총재의 뜻을 따르자.

<> 김학원(서울 성동을) 의원 =대표의 아들 병역문제로 국민들은 불신의
늪에 빠졌다.

보궐선거에서 90%가 야당을 지지한 것은 수그러지지 않는 여론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당의 문제는 여론조사결과 경선탈락자들의 비협조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이대표의 개인문제가 75%를 차지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경선 불복은 있을수 없지만 정권재창출이 불투명해졌다.

따라서 후보교체를 거론해야 한다.

예선에서 3위를 차지한 황영조 선수가 결선에서 우승을 한 것처럼 예선
승자가 부상당하면 결선참가자를 바꿀수 있는 것이다.

추석때까지 하다 안되면 다른 대책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스케줄을 잡아야 한다.

<김태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