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유예협약이 전면 개편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4월21일 전격적으로 실시된지 4개월만의 일이다.

부도협약 자체가 부도위기에 처하고 만 셈이다.

당초 이 협약은 기업의 정상화를 지원하고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었다.

그러나 협약이 시장 논리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 부도협약이 오히려 부도를
부추긴다는 점, 기업 정상화를 두고 금융단과 기업간에 갈등이 중폭되었다는
점 등 각종 문제들이 적지 않아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최근에는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여기에는 부도협약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폐지론 또는 보완론이 강력히 제기돼
왔던 것이다.

정부로서도 지난 25일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상당한 갈등을
겪은 모습이었다.

8월25일 대책은 전체 금융기관을 사실상 부도협약 대상기업으로 지정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정부가 부도협역을 내놓은 4월 당시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시장논리를 일부 부정하면서까지 내놓았던 부도협약이 시행 4개월만에
극심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나타났고 대상 기업이 금융기관으로까지 오히려
확대 개편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아그룹 문제는 정부 당국자들을 진퇴양난으로 몰아갔다.

재경원의 윤증현 금융실장은 일부 기업이 부도협약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도협약을 손보지 않을수 없게 됐다며 기아에 대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선의에 기초해 부도협약을 내놓았는데 정작 혜택을 받는 기업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는 만큼 어떤 형식이건 뜯어 고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당국자들의 입장은 물론 감정적 반응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킬
여지를 남기고 있다.

또 김선홍 그룹회장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엉뚱한 논란마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부도 협약을 둘러싼 논란은 재경원 내부에서조차 보완론 폐지론이 복잡하게
맞물리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강경식 부총리가 법제화를 비롯한 보완론(강화론)에 무게를 두는 반면
실무자들은 폐지론에 무게를 두는 듯한 반응를 보이고 있다.

이는 금융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제2금융권에서는 완전한 폐지론이 우세한 반면 은행권은 보완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보완론(강화론)은 기아그룹과 같이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없도록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 경영권 포기각서를 미리 쓰게 하는 조건으로 부도유예
헤택을 주고 대상 금융기관의 범위에서 보험사를 포함하는 등의 방안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또 부도협약 대상 기업의 범위를 정할 때도 지금처럼 채무총액(2,500억원)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부채비율등 재무적 조건을 기준으로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채권단의 입지는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폐지론도 만만치 않다.

폐지론은 회사정리법 어음법등 기업퇴출제도와 관련된 법체계를 전면
손질한 다음 금융기관 자율협약인 부도협약은 폐지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방안은 일도양단식의 심플한 처방이긴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또다른
시장 충격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수 있다.

어떻든 부도협약이 강화되든 폐지되든 결론이 나기까지 상당한 기간동안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에는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들의 명단이 다시
나돌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있는등 민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책이 혼선을 거듭하면서 엉뚱한 피해만이 돌출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섣부른 부도협약 도입이 무수한 부도와 심각한 금융시장의 불안만을
양산했다면 아무런 결론도 없이 불쑥 제기된 부도협약재검토론은 순식간에
또다른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어떻든 당장의 현안이기도 한 기아문제에 대한 입장 정리가 없이 부도협약
부터 손질해야 하겠다는 당국의 발상법은 비판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 정규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