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주변기기와 위성방송수신기등을 생산하는 한국전장의 김영수
회장은 요즘 남다른 감회에 젖어있다.

전자조합 이사장으로서 지난 96년부터 추진해온 조합 회원사의
북한임가공사업을 드디어 성사시켰기 때문.

중소기업 단위조합으로는 처음으로 성사시킨 이번 일에 김회장이 느끼는
보람은 남다르다.

아무도 쉽게 이루어낼수없다고 생각한 사업이었지만 김회장은 길을 찾아
차근차근 추진해 이루어냈다.

북한 임가공 사업은 사실 전자업계의 고임금해결책으로 농담처럼 나온
얘기였다.

김회장은 말이 나온 김에 관련정부기관에 투자 승인 절차를 밟고 중국에서
중간 다리역할을 해줄수있는 단체를 찾으며 북한 당국자를 만나 협상에
협상을 거치면서 일을 성사시켰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일에도 김회장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확실한
일 추진방식이 돋보였다고 평가한다.

또하나 이번 일에도 김회장은 자신의 회사인 한국전장을 참여시키지않아
자칫 발생할수있는 의혹의 소지를 없앴다.

김회장은 신용과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업에 발을 디딘것도 신용이 한몫을 했다.

한양대 공대를 나와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중소기업의 기술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그회사가 부도가 난후에도 전문 경영인으로 1년넘게
회사를 계속 꾸려나가다가 거래처의 권유로 76년 창업했다.

김회장의 신용을 믿고 외상으로 원부자재를 주는 거래처와 창업했을때
따라와준 종업원들의 믿음 덕분에 창업부터 어려움없이 승승장구했다.

그는 사업에서는 신기술과 시장에 대한 안목으로 발빠르게 사업을
벌이기로 유명하다.

흑백TV시절에 컬러TV부품사업에 착수했고 컴퓨터가 내수시장에서 성장하기
전에 잠재력을 내다보고 주변기기 사업에 뛰어들어 IBM 휴렛팩커드 애플사
등에 87년부터 대량 수출을 시작, 해외시장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IBM사로부터는 5년간 한번의 불량품도 발생하지않은 공로로 공급업체
최초로 IBM의 품질대상을 받기도했다.

88년 기업공개후에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판단,
사업의 내용에 따라 계열사를 설립해 트랜스포머는 한국전원, 무역은
KED상사, 커넥터는 ITT-캐논코리아등으로 나누고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겼다.

또 93년에는 중국 톈진에 영한전자를 설립해 노동집약적인 부품생산을
이전했다.

올들어서는 첨단 정보통신사업에 신규 진출하기위해 안산 본공장의 기존
사업을 중국 톈진공장으로 확장 이전한후 정보통신기기를 생산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정보통신부품 사업을 위해서 지난해부터 정보통신컨소시엄에 참여,
아남텔레콤 온세통신 한국프리텔에 출자했다.

논리적이면서도 차분한 말솜씨로 최근에는 중기청이나 기업세미나
강사로도 인기를 끌고있다.

김회장은 강연에서 "우리 중소기업이 개방화시대에 살아남기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품질에 저렴한 가격으로 한가지 제품이라도 전문화해야하며
인터넷 상거래 시대에 대응한 정보화 체제를 빨리 구축해야한다"고
강조한다.

< 고지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