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규제혁파를 내세우고 있는 정부가 실제로는 규제개혁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경제관련 정부부처의 규제총수조사에 따르면
규제건수는 모두 6천9백15건에 달했다.

이는 95년 총무처가 법령 등을 기초로 조사한 규제건수 1만2천여건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반면 각 부처가 제출한 규제개혁계획에 따르면 소관부처가 폐지를 건의한
규제건수는 3백23건으로 전체 규제총수의 4.7%에 불과했다.

또 완화를 건의한 규제건수도 2백74건으로 전체의 3.9%에 머물렀다.

결국 각 부처가 관장하고 있는 규제중 91.4%인 6천3백18건은 손대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의 속셈인 것이다.

업계 등에서는 아직도 시급히 철폐돼야 하는 규제가 수두룩하다고 아우성
치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작 규제를 휘두르는 소관 부처에서는 규제혁파
의지가 거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각 부처들은 대체로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장기적으로 규제를 풀어야하긴 하지만 현재 여건에서는 시기가 이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밥그릇"을 놓지 않겠다는 관료주의가 그 원천적
이유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해양수산부의 경우 현행 규제가 8백61건에 달하면서도 정작 23건(2.6%)만
폐지하거나 완화할 계획이어서 경제관련 부처중 가장 소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재정경제원도 8백65건의 각종 규제중 90건인 10.4%만 폐지 또는 완화할
방침이어서 규제의지가 실종된 부처로 꼽혔다.

경제부처중 규제가 가장 많은 부처는 건설교통부로 1천3백50건에 달했으며
폐지(58건) 또는 완화(92건)하겠다는 규제건수는 1백50건으로 전체의 11.1%에
그쳤다.

농림부와 통상산업부도 현행 규제건수가 각각 9백7건과 8백77건이나 됐으며
이중 폐지 또는 완화할 방침인 규제수는 전체의 10%내외에 거쳤다.

공정위는 각 부처가 제출한 규제총수와 개혁계획의 타당성을 일일이 심사할
방침이지만 부처의 완강한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보여 규제개혁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박영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