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장례 치르고 나니
사글세 보증금 5백만 달랑 남았다.

한때 천석꾼의 외아들이던 아버지
명문대를 졸업하고 늘
막차 타는 사업에만 투자했다.
몽땅 털어먹었다. 늘
소주로 취해 있는,
허공에다 발 딛고 사는 아버지
곧잘 플루트를 불었다.

간신히 대학 졸업하고
간신히 취직했다.
간신히 세상 한 끄트머리에 편입했다.
아버지 닮아 허공에다 발 딛고 있는
아들,
세상 속으로 더 들어가기 겁이 나
사글세 방에서 재즈피아노를 치고 있다.

유럽 신혼여행 계획하고 있다.

다들
땅바닥에다 발내리기 두려웠다.

시집 "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