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부도로 휘청거리다가 기아사태라는 결정타를 맞은 종합금융사들이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에 나서자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위기감은 지난주말 해태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최고조에 달했고,
급기야 전국 30개 종금사 사장들이 지난 22일 긴급 모임을 갖고 대출회수
자제를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결의는 자칫하면 다같이 망할수 있으니 주요 기업들에 한해 당분간
기업어음을 돌리지 말자는 신사협정으로 대신 정부에 대해 국고자금지원,
한은의 외화자금 예탁확대, 외국환평형기금의 콜론 한도확대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달말과 다음달초에 기아가 발행한 어음이 대규모로 돌아오는데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 대출회수 자제결의에도 불구하고 자금시장은 여전히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다음달과 10월에는 일본계 은행들의 대출상환요구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돼 종금사의 외화자금난이 가중될 전망이다.

요즘 상황은 제2금융권이 정부와 한은의 창구지도까지 건의할 정도로
다급하다.

처음에는 개입을 꺼리던 정부도 결국 제일은행과 종금사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오늘 발표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수 없지만 강력한 안정대책이 나와야 겠다.

우리는 이미 더 이상의 사태악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며
금융기관들의 신용하락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를 할 것을 강조한바 있다.

특히 한은특융은 통화증발및 다른 금융기관과의 형평성 등의 이유로 논란이
많지만 금융기관들의 신용하락을 막고 정부의 단호한 대응의지를 내외에
밝힌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또한 종금사의 외화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적절히
활용해야 하겠다.

지금 당장은 금융위기가 더이상 악화되고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지만 신용공황을 몰고온 원인인 부실기업정리도
늦출수 없는 일이다.

특히 한보 부도와 기아의 표류는 금융불안을 촉발시킨 직접적인 계기인
만큼 자금회전은 물론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도 이 문제의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강도높은 자구노력 외에 정부지원및 정책당국의
신뢰성회복도 필수적이다.

기업의 자구노력은 대부분이 보유부동산을 매각하는 일인데 요즘같은
상황에서는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구조조정을 촉진할 목적으로 국공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고 성업공사 등을 통해 기업부동산을 구입하는 적극적인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정책당국이 좀더 일찍 적극적인 대응을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도 당연히 추궁돼야 한다.

시장자율에 맡긴다는 원칙과 금융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당위는 엄연히
우선순위가 다른데도 혼란을 일으켜 불필요한 오해와 의심까지 받게된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금융시장혼란을 방관한 책임을 통감하고 강력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