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 첨예하게 대립되던 시절,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자 미국은 교육에 1차적인 책임을 물어 교육을 혁신했다.

교육이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백년지대계라는
사실에 대한 하나의 실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혁신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교육개혁위원회가
여러가지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교육의 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개혁의 핵심인 교육 공급주체에 대한 개혁안은 만들어지지 않은채 기존의
틀안에서 개선책이 모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시장원리는 교육부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육이 사전에 그 품질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험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상품을 다른
상품과 특별히 다르게 인식하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외부효과가 있다고 하는,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익히게 하는 이른바
3R교육이 우리의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교육에 깊숙이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GNP 5%수준의 공교육 투자증대, 유치원 의무교육
등은 일견 교육 소비자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부모와 학생의
소비자 주권을 점점 더 왜소하게 만든다.

정부주도의 교육은 우선 획일적인 교육상품의 구매만을 강요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을 극도로 제한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의 현상에 대한 인식이나 사고가 천편일률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들은 사고마저도 모두 똑같이 네모반듯한 "두부"모양으로 가공되고
있다.

더구나 실질적으로 우리교육의 목표가 되어있는 대학입시마저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창의성이나 문제해결능력이 배양될
수 없다.

더욱이 정부주도의 교육은 교육에 투자되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방해한다.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부관리가 다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호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은 돈을 내돈같이 사용할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점에서 정부가 교육자원을 GNP의 5%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은
틀렸다.

우리의 교육을 살리는 길은 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정부 주도의 교육을 민영화하는 것이다.

교육이 민간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면 우선 교육상품의 다양화를 기대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커지고 교육기관간의 경쟁심화로 실질적인
가격인하와 품질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저질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책임경영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육의 민영화는 파행적인 교육운영의 본질적 이유라고 믿고
있는 대학입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교육의 정부주도는 필히 획일적인 선발방법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대학은 학생들이 가진 다양한 정보를 검토할 수 없고 단한번 제공되는
수학능력시험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학의 신입생 선발권이 자율화되면 각 대학은 장기적인 발전계획에 따라
차별화된 선발기준을 만들 것이며 소양이 각각 다른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커질 것이다.

대학교육시장에 경쟁이 도입되면 각 대학은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대학지원자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현실에서 각 대학의
생존노력도 가속화될 것이며 대학도 "나태의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생존에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한 스스로 구속에 의해 계속 발전해 갈 수
있는 집단은 거의 없다.

국립대학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성과에 별 상관없이 돈줄이 보장되어 있는 마당에 열심히 움직일 집단이
얼마나 있겠는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던 어려운 시절에도 선각자들은 사학의 전통을
뿌리내렸다.

현재의 여건은 그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나아졌다.

소위 사교육비라는 이름으로 지출되는 돈의 규모를 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민영화는 매우 희망적이다.

정부주도의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재원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비생산적으로 지출되고 있는 사교육비가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물론 정부가 교육에서 손을 뗌으로써 초래되는 문제점들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일시적이고 교육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다.

또 교육흐름의 정상화라는 이득에 비하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교육에 대한 열의와 막대한 개인지출, 질높은 교육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은 넘쳐나는데도 교육이 정상화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그것들의
효율적인 흐름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지식으로는 불확실한 미래를 다 알 수 없기때문에 특정한
주체가 장래를 예견하여 백년지대계와 같은 장기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각 개인이 자신의 이해를 가장 잘 가늠하여 시장에서 실천할 수
있다.

더구나 국내외적 여건이 크게 변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을 믿는다.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