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스피린 1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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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들은 치통이 생기면 버드나무 껍질을 씹었다.
중세에는 버드나무의 잎과 뿌리로 만든 약이 두통에서 통풍에 이르는
온갖 유형의 통증을 치료하는데 쓰였다.
버드나무에는 오늘날 진통제로 각광을 받는 아스피린 (사세틸살리신산)에
가까운 자연물질인 살리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아스피린인 살리신이 공식 인정을 받게 된 것은 18세기 중엽이었다.
당시 의학계에 유행하던 근원설이라는 이론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근원설은 어느 질병의 치료법이나 그 근원에서 찾아질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버드나무는 습기가 많은 땅에서 잘 자라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처럼 습기가 많은 장소는 열병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버드나무에는 열병을 고치는 성분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성분이 살리신이었다.
아스피린은 살리신 성분이 많이 늘어 있는 관목의 일종인 조팝나무
(spirea)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아스피린은 1897년 8월10일 독일 프레데릭 바이엘제약회사의
29살짜리 화학자였던 페릭스 호프만의 첫 합성 성공으로 탄생되었다.
오랫동안 관절염을 앓고 있던 그의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줄 약을 찾아낼
결심을 하고 바이엘의 실험실 장비를 이용해 여러가지 살리실염 화합물을
실험하던 중에 마침내 아세틸살리실산을 찾아낸 것이었다.
호프만은 그에 이어 아세틸살리실산을 가루로 만드는 법을 개발해 그
시료를 대과의사들에게 보냈더니 그것이 진통에 놀라운 효험이 있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스피린은 바이엘의 제품으로 양산되어 1900년 판매되기 시작한 뒤
1914년에는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그동안 감기 두통 발열 오한 신경통 관절통 요통 류 티즘 등에 투여되는
해열제 진통제 항류머티줄제로서 사용되어 왔는가 하면 근간에는 심장
발작과 뇌일혈 예방에도 뚜렷한 효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세계의 아스피린 소비량은 한해에 무려 5백80억개에 이르렀다.
탄생 1백돌이 되었는데도 새로운 용도를 찾는 시험이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아스피린은 신비의 명약임에 틀림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
중세에는 버드나무의 잎과 뿌리로 만든 약이 두통에서 통풍에 이르는
온갖 유형의 통증을 치료하는데 쓰였다.
버드나무에는 오늘날 진통제로 각광을 받는 아스피린 (사세틸살리신산)에
가까운 자연물질인 살리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아스피린인 살리신이 공식 인정을 받게 된 것은 18세기 중엽이었다.
당시 의학계에 유행하던 근원설이라는 이론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근원설은 어느 질병의 치료법이나 그 근원에서 찾아질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버드나무는 습기가 많은 땅에서 잘 자라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처럼 습기가 많은 장소는 열병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버드나무에는 열병을 고치는 성분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성분이 살리신이었다.
아스피린은 살리신 성분이 많이 늘어 있는 관목의 일종인 조팝나무
(spirea)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아스피린은 1897년 8월10일 독일 프레데릭 바이엘제약회사의
29살짜리 화학자였던 페릭스 호프만의 첫 합성 성공으로 탄생되었다.
오랫동안 관절염을 앓고 있던 그의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줄 약을 찾아낼
결심을 하고 바이엘의 실험실 장비를 이용해 여러가지 살리실염 화합물을
실험하던 중에 마침내 아세틸살리실산을 찾아낸 것이었다.
호프만은 그에 이어 아세틸살리실산을 가루로 만드는 법을 개발해 그
시료를 대과의사들에게 보냈더니 그것이 진통에 놀라운 효험이 있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스피린은 바이엘의 제품으로 양산되어 1900년 판매되기 시작한 뒤
1914년에는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그동안 감기 두통 발열 오한 신경통 관절통 요통 류 티즘 등에 투여되는
해열제 진통제 항류머티줄제로서 사용되어 왔는가 하면 근간에는 심장
발작과 뇌일혈 예방에도 뚜렷한 효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세계의 아스피린 소비량은 한해에 무려 5백80억개에 이르렀다.
탄생 1백돌이 되었는데도 새로운 용도를 찾는 시험이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아스피린은 신비의 명약임에 틀림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