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적인 세계를 유머러스하게 만들고 싶다"

온갖 딱딱하고 단조로움만으로 가득찬 세계.

바로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산업디자이너들의 몫이다.

칫솔 숟가락 밥솥 선풍기 냉장고 등 모든 일상용품들이 그들의 관찰
대상이다.

공장안의 로봇, 길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하늘을 나는 비행기 등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심지어 각종 광고에 등장하는 무형물의 창조도 서슴지 않는다.

"상품구매욕을 자극하라"가 대량생산 대량소비시대 산업디자이너의 역할
이었다면 지금은 단순한 소비적인 의미보다는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요즘 소비자들은 똑같은 자동차라도 뭔가 하나를 더 달아 자기만의 취향을
강조한다.

산업디자인은 어느 분야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요한다.

무생물에 디자인을 적절하게 가미해 살아숨쉬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디자인이 디자인 분야의 꽃으로 불리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산업디자이너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쉽지 않게
됐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각 대학의 산업디자인과에는 매년 우수한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경쟁률도 몇십대 1에 육박한다.

몇년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여기에다 기업들도 앞다퉈 디자인 전문기관을 세운다.

삼성그룹이 지난 95년3월 "삼성아트디자인연구원(SADI)"의 문을 연 이후
한국도자기그룹(프로아트) 코오롱(FIK)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산업디자인
스쿨을 세웠다.

이미 자동차나 전자업체들의 경우 사내에 전문디자인연구소를 세워 산업
디자인 전문인력을 양성해내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운영하는 각종 디자인스쿨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문을
두드린다.

대학보다는 직접 현장감있는 공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성이 국제적 수준의 디자이너 육성을 목표로 운영하는 SADI에는 1백여명
정원에 매년 1천여명이상이 지원서를 낸다.

구름처럼 몰려드는 이들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물론 모두가 한국의 "필립 스탁"이나 "주지아로"가 되겠다는 포부다.

(필립 스탁은 산업디자이너의 원조격인 프랑스 출신의 만능 디자이너이고
주지아로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자동차디자이너이다)

S디자인스쿨의 김주연(22)씨는 "2년후에는 산업디자인으로 유명한 미국의
아트스쿨로 유학, 필립 스탁같은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의 산업디자인이 초보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다.

"대학에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 않아요.

기업들도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선 눈뜨고 있지만 아직은 투자가
부족해요.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이 대부분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D자동차 디자인포럼에 근무하는 황정순씨)

그럼에도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를 꿈꾸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우리 산업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