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회담개최에 따른 제반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뉴욕 예비회담은 당초
예상했던 대로 "탐색전"의 성격으로 끝이 났다.

북한은 회담에서 주한미군철수문제와 대규모 식량지원, 경제제재완화 등
한.미 양국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들을 제기했고 회담은 결국
알멩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물론 이번 회담의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한국전 참전 당사국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한 테이블에 앉아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
만으로도 역사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 본회담의 시기 및 장소, 대표수준, 운영절차 등에 대한 잠정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고 2차 예비회담의 일정에 합의한 대목은 나름대로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본회담이 열릴 경우 장소나 대표단수준 등 형식적인 문제보다는
논의할 의제가 핵심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회담의 성과만으로 4자회담
에 대한 낙관론을 펼치는 것은 시기상조다.

사실 의제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사항들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는 부분으로 회담전부터 쉽게 합의할 것으로 예측됐었다.

여기에 이번 회담자체가 일괄타결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의제문제를
포함한 5개항의 논의사항이 완전 합의되기 전까지는 실질적으로 "공식 합의"
된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동안 북한 특유의 "시간끌기"와 "벼랑끝" 협상전술로 볼 때 이번 예비
회담에서 본회담 개최문제가 완전 타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한.미 양국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북.미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지위문제를 본회담의제로 삼자고 나온 것은
북한이 회담을 진전시킬 용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특히 "북한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4자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문제는 전혀 논의될 수 없다"면서 "북한측의 의도는 결국 4자
회담을 북.미간 회담의 성격으로 끌고 나가려는 속셈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회담 마지막날인 7일 오전(한국시간 7일 밤) 열린 한.미 양국과의
3자 접촉에서 이틀간의 회담에서 제기하지 않았던 식량지원과 경제제재완화
문제를 들고 나온 것도 이미 계산된 수순이라는게 정부당국의 분석이다.

북한으로서는 국제적인 비난여론을 감안, 처음부터 식량문제 등을 제기해
예비회담자체를 파국으로 몰고가지 않는 한편 몇가지 형식적인 사안에 대해
잠정합의를 하는 "성의"를 보이면서도 결국은 본회담을 지연시키는데 성공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측의 태도와 우리정부의 입장을 종합할 때 본회담이 성사되기
까지는 수차례의 예비회담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이건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