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별장에 가서 데생을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아마 그는 그런
시간을 안 주고 자기를 따돌리려고 트릭을 썼을지도 모른다.

미아는 미쳐버린 암컷이 되어 몰래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건물앞에서 머뭇거린다.

갑자기 차가운 밤공기와 만나니까 무엇인가 자기가 무시무시한 모험을
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그녀의 리비도는 이성으로서 켠트롤할 수 없는 본능에 미쳐
버렸다.

미쳐서 타고 있다.

그녀는 지영웅의 오피스텔이 있는 청담동쪽을 향해서 빠르게 걸어간다.

조금 더 가면 영동대교가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압구정동의 끝부분에 있는 황제 오피스텔은 밤에도 낮처럼 불을
밝히고 있을 것 같은 망상을 한다.

이것은 이미 미쳐버린 공주님의 착각이며 본능적인 뜀박질이다.

그녀는 빠르게 달려서 5백미터쯤 달려간다.

술취한 젊은이들이 그녀의 앞길을 막고 해롱댄다.

그녀는 전선을 돌파하는 병사처럼 그들을 제치고 우회하면서 곧장 앞으로
나간다.

"야, 이 기집애. 달리기 선수! 이리와. 우리 어디 가서 함께 자자"

혀꼬부라진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사뭇 그들이 적군들이나 되는 것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린다.

그리고 어느새 희미한 외등만이 깜박이고 있는 황제 오피스텔앞에
도착한다.

어제 저녁에 보았던 수위가 졸고 있다.

미쳐버린 그녀는 겁나는게 없다.

"아저씨, 412호실 오빠가요, 아프다고 빨리 와달래서요. 막 달려왔어요.
병원에 가야 되려나 봐요"

"엘리베이터로 가요. 412호실은 동쪽끝 입니다"

수위는 아까도 그들이 이 앞에서 다정하게 헤어졌으므로 무사통과
시킨다.

오피스텔 수위를 오래하다 보면 밤중에도 온갖 사람들이 드나든다.

더구나 지영웅은 힘이 장사같은 남자고 미아는 여자다.

무슨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수위는 그녀가 약간 돈 것 같이 광적인 시선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를 타자,혹시 잘 못 들여보낸 것은 아닌가 의심을 잠깐 해본다.

그러나 이미 엘리베이터 안으로 미아는 사라져 버린다.

미아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자 진작 왜 이런 방법을 생각 못했었나
하면서 회심의 미소마저 짓는다.

그녀는 이미 자기 정신이 아니다.

그녀는 오직 섹스를 하고 싶다.

잠자는 남자를 깨워서 같이 자고 싶다.

섹스는 황홀할 것이다.

이 세상과 바꿀 수 없는 신비함이 그녀를 압도할 것이다.

그녀는 숨이 탁탁 막힌다.

그녀는 4층에서 못 내리고 10층까지 갔다.

제 정신이 아니다.

그녀는 손을 떨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다시 누른다.

그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을 나와 412호실을 찾는다.

그녀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412호실 앞에 가서 선다.

그리고 벨을 누를까 말까 한참을 망설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