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김포공항 국제선신청사.

기능올림픽선수단에 끼어 검역대를 빠져나오던 금메달리스트 오정석(20)
씨는 환영나온 부모님을 본 순간 눈물을 쏟고 말았다.

다리를 저는 아버지, 아버지 팔을 붙잡고 서 있는 어머니.

그는 부모님께 달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을 환영하기 위해 이날 아침 대구에서 올라온 아버지 오윤복씨(49)와
어머니 정미자씨(45)는 아들을 껴안고 "장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금메달을 걸고 돌아오다니..."

아버지 오씨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
(지체3급).

미화원으로 한달 30만~40만원을 벌어 아들을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

어머니 역시 왼쪽 다리가 마비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불구의 몸.

오씨는 수상소감을 묻는 질문에 "영광을 부모님께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님께서는 몸이 불편한데도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오씨는 어려서부터 손해주가 남달랐다.

멋진 장난감을 만들어 동생을 즐겁게 해주기 일쑤였다고.

그가 경북기계공고에 진학한 것도 이같은 손재주 때문.

죽전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이 "손재주가 뛰어나다"며 공고 진학을
권유했다.

고교시절에는 전교 10위권에 들 만큼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대학에 갈 형편이 아니어서 삼성항공에 입사하게 됐다.

그러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언젠가는 기능대학에 입학, 최고수준의
기술을 배울 작정이다.

오씨의 가족은 부모와 중학교를 중퇴한 동생을 포함 모두 4명.

이들은 지금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보증금 1백80만원의 12평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오씨는 작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가장 노릇까지 도맡아하고
있다.

그가 삼성항공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
지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씨가 번 돈으로 네 식구가 먹고 산다.

오씨가 다니던 경북기계공고 김현수 교감은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도
정석이는 3년간 개근할 정도로 성실했다"면서 "정석이가 특히 손재주가
남달랐다"고 회고했다.

오씨는 이번에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국가로부터 상금
1천2백만원과 매년 1백여만원의 기능장려금을 받게 된다.

회사로부터는 5백만원의 상금과 4박5일의 포상휴가도 받는다.

오씨는 "각종 기계부품을 정밀하게 가공하고 조립할 수 있는 최고의
기능인이 되고 싶다"고 장래 포부를 밝혔다.

<김광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