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경기순환상의 침체국면이기 보다는
세계시장 환경변화에 맞는 산업구조조정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못한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감안, 정부의 경제정책도 산업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등 경제체질의
근본적인 개선을 통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하는데 그 중심을 두고 있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책보다는 물가안정과 경상수지 적자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반기까지의 경상수지 적자규모는 지난 6월 2년6개월만에
처음으로 9천8백만달러의 월간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지난해의
98억8천1백만달러 보다 늘어난 1백4억2천2백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외채가 증가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다름아닌
우리 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능력밖의 과소비 때문이다.

특히 수출증가에 따른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경상수지
적자의 30~40%를 차지하는 무역외 수지는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아 경상수지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무역외수지 적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여행수지 적자와 기술 및 브랜드
도입에 따른 로열티 지급과 관련된 비용들로 90년대들어 지속적으로 증가돼
왔으며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1993년에도 19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실제로 해외여행 경비를 비교해 보면, 외국인의 국내 여행경비는 1인당
평균 1천3백24달러 정도인데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여행 1인당 경비는
1천6백61달러로 96년도만 해도 여행수지 적자가 26억달러에 달했다.

이것은 소득 1만달러의 국민이 해외여행에서 소득 3만달러의 선진국수준
이상으로 과소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국 유명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도 유별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입 브랜드가 품목에 따라서는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듯이 옷 신발 가방까지도 유명브랜드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요즈음이다.

지난해 국내 소비자들의 외국 브랜드 선호로 우리나라가 외국기업에
지불한 로열티만 2조1천억원에 이르렀는데 이는 서울에 지하철 1개 노선을
건설할 수 있는 큰 금액인 것이다.

이러한 과소비 모습은 생활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일본보다 우리의 주택 규모가 크다고 하는 데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집
늘리는 일을 생활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이와같은 크기의 경쟁은 집뿐만이 아니다.

냉장고 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필요이상의 대형화 고급화에
매달리고 있는 느낌이다.

더욱이 우리의 에너지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데도 집보다 차를
우선적으로 장만하며, 에어컨이 대중화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의 씀씀이가
늘었다.

부채 하나로 여름을 보낸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중소업체 사장으로부터 "호텔이나 공공기관에 가면 타고 온 승용차에
따라 사람대접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고급차를 사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소유물건에 의해 주변 사람들의 지위를 판단하는 잘못된 사회
풍조가 사치와 과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남기는 음식 쓰레기만도 연간 8조~10조원 규모라고 하는데
이 금액이라면 한강에 새로운 교량을 60개이상 만들 수 있는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이처럼 이미 생활속에 습관화되어 무감각해져버린 우리의 과소비행태를
보면 작년말 총 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을 정도로 급격히 늘어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가경제나 가정살림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소득이 많더라도 낭비가 많으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난 시절 우리가 자원이나 자본 등 거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OECD에 가입할 정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다름아니라 국민 모두가 근검절약하고 알뜰하게 생활하여 내일을 향해
한마음으로 정진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과소비행태를 보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흔히 신세대들을 향해 "내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오늘에
집착한다"라는 평을 하기도 하지만 오늘의 과소비 현상을 보면 이게 어디
신세대들에게만 국한되는 일이겠는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소비문화가 이렇게 된데는 사회 지도층들이 비전을 제시하고
모범을 보이지 못한 탓이 제일 크겠지만 결국 국민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세태가 그렇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지 않을 수 없다"라면서
끌려가서는 결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돛과 키를 적절히 이용하여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돛단배처럼,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여름휴가를 검소하게 보내고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국민 모두가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