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일각에선 "혁명중"이란 말까지 나온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빅뱅"과 날로 격해지는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다.

혁명이 시작된 날은 지난 6월 27일.

일본 상장기업의 95%선인 1천4백여개 업체의 주주총회가 열린 날이다.

이날 1백60여명의 사장이 갈렸다.

"혁명"이란 단어가 붙은 것은 물론 물갈이된 사장의 수가 많다는 점만은
아니다.

일본기업의 치부였던 "총회꾼" 없이 치러진 첫 주총이었다는 점에서다.

올초 일본 최대증권사인 노무라증권과 4대은행인 다이이치칸교의 임원들이
줄줄이 옷을 벗고 일부는 구속 자살로까지 몰고간 총회꾼 스캔들이 거꾸로
혁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혁명의 진행방향은 최고경영자들의 마음가짐에서 읽을 수 있다.

구습과의 단절이다.

다이이치칸교의 신임은행장인 카츠유키 스기타(54)는 "총회꾼과의 관계를
끊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며 "이를통해 주주와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하겠다"
고 선언했다.

노무라의 신임사장 주니치 우지에(51)도 취임직후 12명의 임원들에게
"2년 임기는 보장하겠지만 연임여부는 철저히 경영실적에 따를 것"이라며
연공서열보다는 "능력"이 인사기준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혁명의 여파중 하나는 세대교체.

스기타행장과 우지에사장 모두 50대 초반이다.

최근 일본 최대 가정용품메이커인 카오는 서열이 매우 낮은 임원인 타쿠야
고토를 사장에 임명했따.상당히 많은 선배들이 쓰린 가슴을 쓰다듬어야 했다.

트럭제조업체인 히노자동차를 비롯 토레이산업 야마토운송등 세대교체는
이제 붐이 되었다.

전문경영진의 중용도 새로운 흐름이다.

세계 최대오락기구업체인 반다이는 최근 창업자의 아들인 마고타
야마시나사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후선으로 돌렸다.

새 사장은 타카시 모기 소프트웨어부문담당임원.

전문경영인이 처음으로 최고경영자의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중간관리계층과 일반종업원쪽에선 혁명의 파고가 더욱 높다.

"중간관리자들은 91~96년의 경기후퇴로 실질임금이 줄어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통받을때 선배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알고 매우 격분하고
있다"는게 토시히코 후지에 슈큐토쿠대학 경영학교수의 말이다.

이들은 이제 회사경영이 불만스러울때는 집단적인 힘을 발휘한다.

전일본항공(ANA)의 토쿠지 와카사명예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계열호텔사장
으로 임명하자 중간관리자들이 청원서를 올려 이를 막았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토쿠지회장은 곧 옷을 벗어야 했다.

반다이가 비디오게임전문회사인 세가와 합병하려할때도 직원들이 반대,
합병을 무산시켰다.

경영컨설턴트인 요시오 모리조노는 "젊은 관리자들과 종업원들은 새로운
업무방식을 꾀하고 있다"며 "이들이 민주주의 토양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전후세대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놓칠수 없는 또 하나의 변화는 기업조직, 강력한 감시기능을 가진 새로운
관리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노무라는 3명의 외부변호사를 멤버로 하는 "내부감시위원회"를 구성했고
다이이치칸교도 은행측이 법규를 제대로 지키는지를 감시하는 조직을 만들
계획이다.

혁명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제 일본기업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종신고용은 사라질 것이다.
조직축소와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기업가치가 강조되면서 해고와 조기퇴직도
비일비재해질 것이다"(후지에 교수)

총회꾼스캔들로 촉발된 혁명을 겪고 있는 "일본주식회사".

성공한 혁명이 되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지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을지
관심사다.

< 육동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