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으로 달려온 영신의 어머니는 그녀가 살아났다는 것 만이 대견해서
영신의 푸릇푸릇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가야, 내가 잘못했다.

네가 무슨 봉변을 당하기 전에 네 말대로 이혼을 시켰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김치수 회장도 막 다녀갔고 마음씨 착한 영신의 시어머니도 다녀갔다.

다만 영신이 허락을 안 해서 윤효상만 이 병실에 못 들어온다.

그녀는 폭행당할 때의 기억이 너무 무시무시해서 다시는 그와
대면할 수가 없다.

"어머니, 부탁이 있어요"

"오냐, 어서 말해라. 미안하다. 나는 조루증이란 것이 어떤 건지
의사에게 물어서 알았다.

내가 미안하구나.

나는 그저 세번이상 결혼하는 것은 서양사람들이나 하는 쌍스러운
행동이라고만 생각해왔단다.

조루증은 이혼의 사유가 충분히 될 수 있다더라"

"어머니, 모두 지나간 일이야. 그러니까 어머니의 사고방식을 나에게
강요 마세요.

나도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 정말 징그럽게 참고 또 참으며 살아왔어요.

어머니 핸드폰 이리 주세요"

"참, 어떤 남자가 자꾸 너를 찾더라. 병원에 있다니까 어느 병원이냐구
열화같이 전화를 하던데, 그가 누구냐?"

"새로운 애인이에요. 가장 완벽한 남자를 알았어요. 진짜 남자"

그러면서 영신은 쿡쿡 한다.

그녀는 손목을 다쳐서 핸드폰도 쥘 수가 없다.

그녀는 애를 쓰다가 어머니에게 핸드폰을 눌러달라고 한다.

"내가 부르는대로 누르세요. 그리고 내 귀앞에 바짝 놔주세요"

신호음만 가고 아무도 안 받는다.

지영웅은 핸드폰을 끄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거든 병원에는 오지 못한다고 하구요.

상처가 다 나으면 다시 전화를 하고 만나겠다고 약속을 해주세요.

전화번호를 주어서 여기로 걸게 하든가요.

그게 제일 좋겠어요.

이제 말은 할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폭행죄로 윤서방을 고발한대. 그러지말고 그냥 합의이혼을
시키라고 하니까 안 된대나.

너를 친 것은 자기를 친 것과 같다면서"

"어머니는 제발 윤서방 일에 끼여들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그는 이렇게 나쁜 놈이에요.

내가 자기 창피할까봐 조루증이란 말을 안 하고 살아왔는데 끝에 가서는
내가 이렇게 당했지 않아요.

어머니가 생각하는 그런 양질의 사람이 아니래두요"

한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어머니는 딸의 터진 입술과 멍든 눈자위의
상처를 끔찍스럽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녀는 진정 후회하고 있었다.

"어머니, 그 전화가 또 오면 몸조심하라고 이르세요.

혹시 윤서방이 깡패를 사서 나쁜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 친구는 가끔 미친 짓을 잘 하니까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