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은 상대적으로 정신문명의 퇴조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그동안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해온 서구의 정신문명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이사장 정주영)은 창립 20주년을 기념, 1~2일
서울 호텔롯데데서 21세기 서구 정신문화의 위기상황을 살피고 그 대안으로
동양적 가치관을 모색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1세기의 도전, 동양윤리 응답''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어령(이화여대), 투 웨이밍(미국 하버드대)교수가 기조연설을, 다카하시스
스스무 일본 메지로대 총장, 데이비드 칼루파하나 미국 하와이대 교수,
람지싱 간디연구소장, 박이문 포항공대 교수 등 16명이 주제발표를 맡았다.

이 가운데 위 잉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발표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정리 = 박준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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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윤리와 자본주의 ]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가 서구의 개신교윤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발전했다고 밝혔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근검과 저축을 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회윤리로
정당한 부의 축적을 가능케 하는 이론적 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베버는 한편 동양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원인을 탐구하면서
동양의 지배적 사상중 하나였던 유교가 부의 축적을 그다지 장려하지
않은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말해주듯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천대받았다는 사실이 베버의 논리를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나 과연 프로테스탄트들의 금욕주의만이 특정상황에서 자본주의
정신으로 발전하였는가.

시장경제에서 자본주의를 분리하자는 페르낭 브로델의 견해에 근거, 나는
종교윤리와 경제발전과의 관계를 살필 때 우리의 초점을 서구 자본주의에서
모든 사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시장경제로 옮길 것을 제안한다.

물론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에 대해 자세히 규명한 것은
종교윤리와 시장경제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범위에서 베버의 논문은 여전히 의미있고 간단히 무시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베버의 연구 당시 중국학 발전 수준을 고려할 때 베버의 유교 분석은
예리하고 통찰력을 지니고 있지만 오류가 많다고 생각된다.

베버는 전통 유교와 성리학의 기본적인 차이조차 몰랐던게 아닐까라는
회의를 지울 수 없다.

틀림없는 것은 그가 중국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사에 관한한 베버의 내용을 정정해줘야 한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중국의 후기 왕조시대(대략 1500-1800년대까지)에는
유교가 시장경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상인들은 중국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한국 일본 등과
활발하게 거래했고 또한 유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행위가 유교의 가르침을 위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회구성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16세기이후 유교를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도 현대적 의미의
비즈니스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상업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관리가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유교는 식자층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상인계층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유교의 도는 시장 사람들에게도 평등하게 열려 있다"는 왕양명의 말은
베버의 판단과는 대조적이다.

왜 베버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현상이 벌어졌을까.

먼저 중국상인들의 근로윤리에는 내세의 차원이 있었다.

유교는 주어진 세계에 적응하는 합리주의가 아니다.

칼비니즘의 "구원에 대한 불안"에 해당하는 것으로 유교에는 "영생의
불안"이 있다.

두번째로 유교의 합리주의는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장합리성을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예를 들어 베버가 서구에서의 "이성화의 단계"를 보여주기 위해 예로 든
"박리다매"의 원리와 수학의 시장계산에 대한 적용은 둘 다 16~19세기
중국시장의 중심적 특징이었다.

이렇게 볼때 중국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이 최근 몇십년동안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게된 배경이 명확해진다.

동양에서도 서구의 신교도윤리에 해당하는 유교가 존재, 경제발전의
초석이 됐던 것이다.

21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축은 동아시아가 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다.

중국의 유교윤리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밝힌 이번 논문이 유교윤리와
동아시아 발전의 관계를 밝히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