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밤을 지나야 너에게 갈 수 있다.

내가 서성이는 곳에는 잎 떨군 나무들만 있다.

아무것도 없이 가슴만 뜨겁다.

나의 누구여 그러므로 길을 밝혀 내 스스로 갈 수 없구나.

눈물이라든가 피라든가 뼈라든가,

그런 것의 인간의 어딘가에서 식어내리는 맑은 물방울 몇몇 방울
따뜻하게 흘리고 나면, 은유의 불빛은 내일까지 살아 있을 것이다.

나의 누구여 그러므로 나를 포옹하러 어두운 길로 오려무나.

나무들은 나를 외면하고서 계속 잎을 떨군다.

검은 산이 그걸 받아서 내 가슴을 덮는다.

내 가슴에서 낙엽 타, 허공에 내가 연기 되어 오른다.

네가 날 보고 기뻐할 것이다.

시집 "사물의 운명"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