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상은 그녀의 그런 모욕적인 말에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폭발하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는 거의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그는 그러나 폭발할 것 같은 분노의 불꽃을 별장이 보이는 강에
다다를 때까지 무서운 인내로 참아낸다.

윤효상은 생각한다.

아내는 결혼 1년이 지나자 얼음처럼 냉랭해졌는데 그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무슨 차를 마실까? 당신이 원하는 차를 끓여줄게"

"좋아요. 꼭 차한잔만 마시고 돌아가야 돼요.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어길 수가 없어요"

"남자하고의 약속인가?"

그는 악마같은 얼굴이 되면서 그녀를 쏘아본다.

그리고 싸늘하게 웃으면서 전기주전자에 물을 올려놓는다.

그들은 여기 양수리 별장에 와서 점심도 먹고 차도 마셨다.

이 별장을 아버지가 지은뒤 가끔 있었던 일이다.

강변 미류나무 숲속에 가려져 있는 이 별장은 김치수 회장이 참모들과
함께 강낚시를 하면서 가끔 이용하는 비밀스러운 시골집으로 모든게
오토매틱으로 되어 있어서 정문만 들어서면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돼 있다.

김치수 회장은 말년을 여기에 와서 지내려고 강변에 있는 산 하나를 사서
3년동안이나 열심히 지었다.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도록 특별 설계를 한,
외관은 평범한 시골의 2층집이지만 내부는 아주 견고하고 호화스럽게
설계된 별장이었다.

모든 열처리는 전기로 하도록 되어 있고 창문에는 완벽한 도난방지기가
장치돼 있어 아무도 정문의 컴퓨터 키 넘버를 모르고는 들어올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관리인이 없었다.

급해서 부르면 파출소에게 출동할 수 있게 파출소와 경찰서 하고만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능숙하게 컴퓨터 키를 누르는 그의 빠른 손동작을 보면서 그가
여기를 자주 이용하고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여기 자주 왔어요? 별장의 컴퓨터를 잘 이용하네요"

"의심스러운 거야? 내가 어찌 감히 장인의 별장을 허가도 없이 쓸 수
있겠어. 여기는 장인이 특히 자주 오시는 곳인데"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능숙하게 문을 열고 부엌 기구들을 이용하지요?"

"그야 내가 감독해서 지은 집이니까. 나는 이 별장에 대한 애정
때문에라도 당신과 헤어지기 싫은 거야"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