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수 < A&C코오롱 대표이사 >

출근때 이용하는 도로는 왕복 3차선의 꽤 넓은 도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왕복 2차선의 구식도로였으나 지하철 공사와 함께
넓어지고 도로포장과 시설물도 최신식으로 바뀌어 출근길 운전이 얼마나
즐거워질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에 여기 저기 파헤친 도로를 짜증내지 않고
다닐수 있었다.

공사는 끝나고 깨끗한 포장과 선명한 선, 그리고 신호등과 건널목 등 정말
좋아보였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 운전시간은 전혀 줄지 않았고 공사전보다도
더 짜증이 났다.

느긋한 출근운전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 또 그럴만한 시민의 권리도 있고 -
전혀 기대밖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든 신작로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3개 차선 중 하나는 버스 전용차선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또 하나는
좌회전과 비보호좌회전, 그리고 U턴용으로 되어 있어 직진하는 차는 사용
하지 못한다.

정확히 세어보진 못했지만 10 도 못되는 길이에 20군데도 넘는다.

야간에는 버스전용차선이 예전처럼 주차장으로 변한다.

차량도 많지 않고 신호등도 별로 없던 때에 사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
하는 탓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6차선 대로에 8m 골목길로의 좌회전도 몇군데 있다.

전부터 사용하던 주민들의 불편을 고려해서였겠지라고 추측은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간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다.

경찰서와 구청에 가서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청하지 않은 내 책임도 있지만
이런 업무를 하면서 봉급을 타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설과 장비는 현대화됐는데 운영방법은 신작로 때와 같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게 이와 비슷한 예가 많다.

우리 사무실 근처에 있는 80여대 수용의 공영주차장은 관리인만 지키는채
몇달동안 주차하는 자동차가 없다.

공사는 후일의 수요를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관리인 월급은 누가, 왜 주는가.

그토록 많은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과 세금을 들여 검토한 고속철도는
솔직히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은 잘 모른다.

아파트의 주소는 또 왜 이리 긴가.

컴퓨터 주소록에 입력하기가 곤란해 동의 번지수와 통반은 빼고 동호수만
입력한다.

어느 아파트는 <><>시 <><>구 <><>동 <><>번지 <><>호 <><>통 <><>반,
무슨 마을에 무슨 아파트 몇동 몇호라고 해야 한다.

누가 언제쯤 사용하기 편하게 고쳐줄 것인가.

외국의 주소에 비해 3배나 길다.

컴퓨터도 그렇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으나 모든 기능을 충분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무실에선 평균 5% 정도의 기능과 용량만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컴퓨터를 활용해야 투자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출근길가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아침에 등교하는 모든 학생들이 정해진 선을 따라 한줄로 걸어간다.

집 앞부터 학교 정문까지,아니 교실까지인지도 모른다.

재잘거리면서 등교하는 멋은 없어졌지만 교통사고로부터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선생님들의 조그만 노력이 정말로 고귀해 보인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경제 난제중의 하나인 고비용 저효율은 시설과 장비의 현대화로만
개선되지 못한다.

크고 거창한 국가적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의 생활 주변에 널려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상식에 맞게 고쳐 나가야 한다.

내가 맡은 업무,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작은 일들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간단하게 운영 방법만 바꾸어도 대단히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이것이
거창한 국가 위원회의 활동보다도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