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하우스 카를로스안에 들어가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두리번 거려도
미아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도로 돌아나오려고 할때 두볼이 빨갛게 상기된 미아가 "오빠"하고
화장실이라 기억되는 쪽으로부터 달려온다.

차라리 빨리 나가버릴 걸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 아가씨는 틀림없이 오피스텔 수위실로 와서
지영웅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난처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그는 수위실에다 보안을 요청할 필요를 느낀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그녀를 요령좋게 떼어 버리겠다고 다시 마음을
도사려 먹으면서 커피를 시킨다.

젊은 여자와 있으면 그는 불안하다.

목에 칼자국을 낸 최미지 때문이다.

"영이 오빠, 얼굴이 너무 지쳐 보여요"

"그건 당연하지.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간 여행이니까. 신혼여행처럼
환상적이었지"

그는 무우를 짜르듯이 쑥덕 짜르며 말했다.

실망을 하는 기분이 얼굴에 가득해지면서 미아는 갑자기 침묵을 한다.

그리고 얼굴이 잘 생기고 수려한 겉모습을 한 지영웅의, 아니 백영이란
남자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서 속이 쓰리다.

그러나 또 한편 이 남자는 얼마나 솔직담백하냐. 그러면서도 거절은
안 하고 자기와 커피를 마시러 나온 것을 보면 무엇인가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닌 것도 같다.

미아는 호시탐탐 그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않는다.

이 세상에 나서 만난 가장 그려보고 싶은 남자의 모습을 가진 특별한
마스크의 청년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짝사랑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게임의 시작인 것도
같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미아는 자기의 호기심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어디 어디 갔어요? 나도 작년에 친구와 미국을 배낭여행했는데"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연출하면서 그에게 대시한다.

첫인상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외모를 한 아가씨다.

우선 느낌이 신선하다.

자기가 떳떳한 환경을 가진 남자라면 사귀어도 좋을 만큼 인상이 상큼한
아가씨다.

그러나 그는 커피한잔을 다 마신후 자기의 입장을 정리한다.

그는 패션모델 최미지에게 칼로 린치를 당하고 죽을 뻔 한 순간의 공포가
기억속에 떠오르면서 바짝 경계를 한다.

"어떤 그룹에 속하는 여행이었어요?"

하도 지영웅이 입을 다물고 있어서 무안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묻는다.

"설마 배낭여행을 한 것 같지는 않구요?"

"물론, 나는 어른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하지. 나이가 몇살인데. 내가
재수생 아가씨와 커피를 마신다고 어린 소년은 아니지"

"나는 오빠가 없어요. 그래서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말로만
하는 오빠 말구, 애인도 되고 남편도 되는 오빠 말구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