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회주의 정당 대표들이 5일 스웨덴의 말뫼에 집결, "좌파재건"
자축연을 갖는다.

"우리의 책임:새로운 유럽"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3일간 열리는 유럽사회주의
정상회담에는 최근 한달새 잇따라 집권한 토니 블레어와 리오넬 조스팽
영.프랑스 양국총리를 비롯 네덜란드 포르투갈 그리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 10개국 총리와 독일 사민당 당수가 참석한다.

구소련과 동구 공산체제붕괴에 이은 서유럽의 사회주의 퇴조이후 6년만에
유럽좌파는 대반격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럽연합(EU)15개중 우파 단독정권은 독일 스페인뿐이다.

유럽에서 좌파를 "컴백"시킨 동인은 무엇인가.

영국의 이코노미스지는 "유럽의 좌파들은 변신의 대가, 즉 우경화한 덕분에
정권에 접근할수 있었다"고 진단한다.

유럽의 좌파정당들은 공기업민영화 복지정책개편 세금인하 재정적자수술등
전통적인 우파의 경제논리를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

좌파중흥의 기수로 불리는 토니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은 일찌감치 과거
(정통좌파)와 결별했다.

강성노조를 버리고 경제적으론 대처리즘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정권을 잡았다.

미국의 언론들은 "영국 노동당은 궁극적으로 빌클린턴의 미국 민주당에
가깝게 탈바꿈할 것"이라고 내다볼 정도다.

영국과 프랑스의 좌파집권에 고무된 독일의 사민당은 "토니 브레어 배우기"
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년에 집권한 이탈리아 좌파도 중도노선을 표방한 덕택에 정권교체를
이룰수 있었다.

폴란드 헝가리의 경우 구 공산당은 자유시장원칙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서야
집권할수 있었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동구권의 공산당은 마켓팅용 간판"이라고 묘사한다.

북유럽의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지금까진 버티고 있지만 우선회하는 것이
시간문제로 보인다.

유럽의 좌파가 권토중래하게된 배경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80,90년대를 풍미해온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보수주의
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당시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력과 일본, 동아시아의 공세속에서 작은정부,
민영화, 실업구제보다는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우파의 논리는 설득력을
발휘했었다.

하지만 성과는 미흡하고 부작용은 컸다.

고용정책이 사실상 내팽겨친 영국에선 한때 실업자가 3백만에 육박하기도
했다.

독일의 경우 통일이후 시장원리에 입각한 리스트럭처링을 추진하는 과정
에서 무려 4백만을 헤아리는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렸다.

프랑스는 우파인 시라크대통령 집권이후 재정적자 축소와 공기업민영화를
밀어부친 결과, 실업률이 12%선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유권자들은 "이럴바에야 차라리 과거(좌파시절)가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변화에 힘입어 유럽의 좌파는 다시 전면에 나설수 있었지만
앞날은 혼미해 보인다.

경제재건을 위해 우경화로 치달을 것인지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
중도노선을 고수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한 좌파마다 형형색색이다.

대부분의 유럽좌파가 유럽통합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이고 자국이익을 우선
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런 고민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도 차이는 극명하다.

프랑스의 집권 좌파는 사회보장과 기업정책 등에서 "토니 블레어"를 흉내낼
뜻이 없어 보인다.

좌파의 속성상 실업대책과 복지재건을 강조하지만 이를 위해선 세금인상밖에
다른 묘안이 없다.

이런 판국에 유럽의 완전 통합은 뒷전으로 밀릴수밖에 없다.

당장 단일통화제의 출범을 위해선 재정긴축부터 해야 하지만 일자리 보장과
복지유지에 비중을 두는 좌파정부들이 이일을 계획대로 해낼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유럽의 대외경쟁력이 단숨에 높아져 이같은 모순을 풀어낼
가능성도 전무하다.

유럽 좌파는 "컴백"에 성공했지만 "수성"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 이동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