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으로 세상이 바뀌자 불자(불자)들은 살길을 찾아야 하게 됐다.

억불정책이 취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무리는 산으로 들어갔다.

속세를 피해 은둔하면서 참선과 독경으로 불법의 맥을 이으려 했다.

이들이 이른바 이판승이다.

또다른 한쪽은 그냥 남았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사찰을 지켜냈다.

이들이 사판승이다.

가는 길이 다르니 두 무리는 생각과 처신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후세에 남긴 족적도 판이하다.

이판승은 학업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대중을 교화하고 불교를 발전시키는
데는 남긴 공이 크지 않다.

반면 사판승은 상대적으로 교리에 약하긴 했지만 사원을 지켜낸
건 그들의 업적이라 할만하다.

이렇듯 흑백으로 달랐지만 오늘날 한국의 불교가 이만큼 융성해진 것은
바로 이 두 무리간의 상호보완 관계에서 찾아진다.

한쪽에선 부단한 학업으로 불법을 보전했고 다른 한 쪽은 폐사를
막아냈다.

자칫하면 "이판사판"이 되기 십상인 상황에서 이들은 용케도 서로의
장점을 대물림했다.

몇세기뒤인 요즘 서울에선 이판과 사판간에 한판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제도 개편을 들러싼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의 대치다.

입씨름이나 밥그릇싸움의 수준을 넘어선지는 오래다.

아예 전면전으로 돌입해 차제에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험악한 태세다.

통화정책과 감독권을 한곳에 몰아넣은 유례가 없다고 재경원이 포문을
열자 한국은행은 전세계 중앙은행의 81%가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임하는 한은총재가 아무리 잘못된 정책을 취해도
견제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대통령권한 침해 라고 쏘아 붙이자 한은은
중앙은행의 존재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급기야 재경원은 "위헌론"을 꺼내 들었고 한은은 "관치금융 망국론"을
펴기에 이르러 있다.

사실 양쪽에 견해차이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태생과 역할이 틀리고 지향하는 방향도 어쩔수 없이 다르게 돼 있다.

한쪽은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판(재정경제원)이고
다른 쪽은 통화가치 안정의 파수꾼을 자임하는 이판(한국은행)이니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원초적으로 기대할 수 없게 돼 있다.

쥐뿔도 없는 나라에서 유일한 자원인 "돈"이 "정책"과 따로돌며 제맘대로
굴러다니게 방치해 둔다는 건 사판의 입장에서 보면 직무유기일 수 밖에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까지 가입한 마당에 돈이 돈의 논리를 쫓아
움직이게 해야지 왠 "관치금융"이냐는 이판의 주장도 억지가 아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취할 장단점도 있다.

큰 변화가 수반되는 일이니 최적의 조합을 위해서도 온갖 학설을
다 끄집어 내 검증해 볼 가치도 있다.

문제는 이대로 가다간 이판과 사판의 장점을 대물림 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판사판" 막가는 판이 되고 말 것이라는 데 있다.

초장엔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내세우더니 이젠 금융을 왜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연의 목적마저 잊은채 오로지 "이겨야 한다"는 본능만
남았다.

한트럭씩 쏟아 내놓은 자료들은 한결같이 아전인수로 채워져 있다.

금융을 개혁해야 하는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다.

통화가치의 안정, 금융제도의 건전성과 안정성, 시장의 효율적 작동과
금융산업 경쟁력 향상.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근사한 구호도 재경원과 한은의 권한쟁취를 위한 수사이
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한 더이상 개혁의 목적이 아니다.

금융을 개혁해야 하는 까닭은 그들이 외치는 것처럼 그렇게 현학적일
필요도 없다.

나같은 천학에겐 낮은 금리로 돈이 자유스럽게 돌아가게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낮은 금리가 통화가치 안정과 경쟁력이고, 자유스러운 게 바로 시장의
효율이다.

피 튀기게 싸우고 있지만 규제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감독이
선진화되는 것도 없다.

누가 감독권을 쥐건, 정책기능이 어디로 가던간에 얼굴만 바뀔 뿐
누군가는 또 규제의 칼을 휘두르게 돼 있다.

정작 개혁의 산물을 기대해야할 금융기관들은 관심조차 없다.

결국 순전히 상대방을 쓰러트리기 위한 난타전이 돼 버렸다.

이판승과 사판승의 숭고한 희생이 해방후 비구승과 대처승의 이전투구로
더렵혀진 적이 있었다.

이번엔 어려운 여건에서 오늘의 한국경제를 일으킨 선배들의 공이
후배들이 치졸한 실속챙기기로 먹칠당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