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협약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하나는 은행들과 제2금융권의 협조가 제대로
안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부도 협약의 출발점도 1, 2금융권의 비협조였었다.

자금이 어려운 기업이 생기면 2금융권은 어음을 돌려 자금을 회수해 가고
결국 주거래 은행이 모든 총대를 매게 된다는 데서 부도협약이 탄생했다.

2금융권의 자금회수를 막자는데도 부도 협약의 목적이 있었던 만큼 은행들과
제2금융권의 갈등은 불가피한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대농그룹의 경우 이같은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농그룹에 대한 여신액은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이 1천9백69억원으로 가장
많고 상업은행이 6백10억원 장기은행이 5백86억원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이는 은행만을 따졌을때 그렇다는 것일뿐 제2금융권을 합치면
대한종금이 1천3백50억원으로 제2순위의 채권자다.

대한종금은 서울은행을 제외하고는 어떤 은행들보다 채권금액이 많다.

그러나 대한종금은 대농그룹의 운명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사실 아무런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

대한종금은 이협약에 따라 기업을 살릴지 법정관리나 3자인수를 추진할지
등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할수 없다.

대출금의 주식전환이나 자금관리단을 파견하는 회의에도 참여할수 없다.

부도협약은 은행과 종금사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있지만 종금사는
대출원리금 유예나 감면 등에 대해서만 발언할수 있을 뿐 다른 결정사항에는
의결권이 없다.

부도협약이 이같은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추가자금 지원을 은행이 맏도록
한만큼 돈을 대는 쪽에서 결정권도 갖는다는 논리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진로의 경우에는 이런 논리가 통했었다.

종금사들보다 은행들이 채권액도 많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수는 없었다.

그러나 대농의 경우 사태가 달라졌다.

제2의 채권자가 채권자 집회에서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상황은 분명 문제라
할수 있다.

그래서 종금사들은 자금의 추가지원은 채권자 집회에서의 토론의 결과일뿐
회의의 전제조건이 될수 없다며 협약의 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추가지원 비율만큼 발언권을 갖는 것도 옳지만 채권액 만큼의 발언권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 제2금융권의 주장이다.

< 오광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