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의 머리를 다정하게 빗으로 빗겨준다.

흐트러진 머리가 말끔히 정돈되자 지코치가 갑자기 하하하하 하고 폭소를
터뜨린다.

그녀가 빗으로 자기의 머리를 살살 빗겨주는 것이 너무도 좋아서 였다.

"왜 웃어요?"

"진짜 누님 같으니까요. 야쿠자라고 공갈쳤으니 이제 김사장은 영락없는
야쿠자의 누나가 되었잖아 하하하하. 내 속에 깡패의 피가 흐르고 있나봐.
야쿠자로 봐주면 너무너무 기분이 좋거든요. 하하하하"

그들 옆으로 같은 그룹의 중년 부부가 비웃음을 띤채로 슬쩍 지나친다.

알 것을 다 알았는데 무얼 그리 시치미떼느냐 하는 야한 비웃음을 가득히
담은 모욕적인 시선이다.

"누나, 그 치가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렸나봐. 너무너무 눈치가
달라졌지 않아?"

"됐어요. 이제 지코치는 야쿠자가 되어서 내일이면 사람들이 지코치에게
처음처럼 호의적으로 대할 거예요. 사람들에겐 폭력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있으니까요. 우선 굽신거리면 기분이 좋을 것이고"

그러나 지코치가 하하하하 하고 다시 파안대소한다.

사랑을 하기 시작한 그들은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행복의 절정을
치닫고 있어서 모든 것이 즐겁고 흔쾌하다.

사랑은 장님을 만들 뿐만 아니라 순하게도 만든다.

다른 때 같으면 지영웅은 민 가이드의 이빨을 다섯대는 부러뜨렸을
것이다.

설움받는 세상에 대한 펀치는 대단히 강해서 그가 완력을 휘둘렀다 하면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그는 사실 서울 대치동파 깡패들 사이에서 원한 서린 살인펀치를
휘두르는 똘마니로 석달을 보낸 적이 있다.

그가 주먹세계에서 빨리 손을 뗀 것은 대장의 애인을 건드리고 혼난 바로
그 무렵에 대장이 그를 감방에 보내려 한다는 정보를 듣고 유명한
최형사를 찾아가서 비는 바람에 가능했다.

독종이고 범죄수사의 귀재인 최형사가 지영웅을 싸고돌며 대장에게
호통을 쳐서 정말 재수좋게 그 조직을 빠져 나왔다.

그러니까 전직 깡패인 것 만은 사실이었다.

갑자기 김영신은 그의 주먹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피낫컬러다를 스트로가 휘도록 맛나게 마시고 있는 지코치를 사랑스럽고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영신이 불쑥, "진짜 야쿠자 훈련받은 건
아니지요?"

"야쿠자가 될 수 있는 소질이 없대요. 낙제 먹었어요. 주먹을 휘두르는
데도 지략과 억제력이 필요한데 나는 순발력밖에 없다는 거예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