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퇴직이다.

예기치 못했던 충격이다.

어느날 자신이 대상이 되었다는 얘기가 동료들 사이에 수군대며 돌고
우리들의 김부장 박과장들은 사표를 쓴다.

지난해 직장을 그만두었던 한 친구는 퇴직후 한동안 여느때와 같이
넥타이매고 출근했었노라고 연말의 술자리에서 씁쓰레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 내가 바로 그 말로만 듣던 명예퇴직이다.

약간의 퇴직금이 있겠지만 미래는 막막하다.

퇴직금을 노린 사기꾼들이 득실댄다는데 그나마의 돈도 날리지 않겠는가
하고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아직은 이자 생활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

두주먹은 아직도 불끈 힘이 남아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아내도 아직은 젊고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 있다.

생각하면 정말이지 어중간한 나이다.

언젠가 "지랄같이 푸른 하늘"이라고 김지하는 시를 썼었지.

80년대초의 암울한, 그러나 열망이 치솟던 계절에 우린 모두 그런 노래를
읊었었다.

이제 겨우 중년인데 불과 10년에 강산이 변하고 김지하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또다시 시린 푸른 하늘을 나는 곱씹어 올려다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달 1차 명퇴를 받을 때 직장을 떠났던 고참 박부장은 우선 등산이나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강원도나 지리산 부근 계곡에는 실직자들과 사업 실패자들이 남들은 다들
바쁘게 돌아가는 주중에도 득실댄다는 말도 들어두었던 터다.

어찌할 건가.

지난 연초에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창업 박람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는데 이젠 그들이 나의 경쟁자들이란 말인가.

무슨 아이템들을 가지고 주최측은 박람회까지 열었을까.

한번 보아 두기라도 했을 것을.

후회가 밀려든다.

학창시절엔 그런 말들을 했다.

남아로 태어나 혁명을 하든지 아니면 사업을 해 큰 성공을 거두라고
말이다.

아직 날짜가 남아있다.

곰곰이 돌아보자.

때마침 금융기관들은 퇴직자들을 위한 상품을 쏟아내고 썩 기분이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최악의 경우 앞으로 몇년은 금융기관을 통해서라도 먹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주에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했지만 모은행이 주최하는 창업스쿨에
다녀왔었다.

목이 쉰 투사들은 성공사례들을 쏟아내지만 아직은 꿈만 같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수없는 아이템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이내 사라진다.

이럴줄 알았으면 영업직이나 기술직이 한결 나았을 테다.

종이와 펜대만 가지고 일해온 터라 앞날이 막막하다.

직장 생활 18년에 배운 것은 많지만 막상 써먹을 것은 없다.

창업스쿨이 인기가 있고 백화점들은 저마다 창업 강좌를 마련하느라
부산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한 2년 각오하고 홀로 프랑스에 가 제빵학교를 다녀볼까하는 생각도 불쑥
머리를 스친다.

일본에 건너가 미니사업들이라도 훑어볼까하는 생각도 한구석엔 남아있다.

그래 "상상은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못할 일도 없다.

어차피 경쟁사회다.

미처 다 몰랐기 때문에 신입직원 시절 그렇게 회사에 열정을 바쳤듯이
어떤 분야건 미처 모르고 뛰어들어도 기어이 적응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가장 흔한 말이야말로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명퇴는 이제 시작일 지도 모른다.

국민소득 1만달러에 낡은 삶의 방식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재벌은 못될 지라도 알찬 생활인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스트는 노래하지 않았나.

"가보지 않았던, 그러나 더 좋은 길"을 말이다.

언젠가 가야할 길일 것이다.

몇년을 더 근무해 정년퇴직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요즘은 60세가 되어도 살이 찌고 피부는 피둥피둥하다.

그때면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그래 한 몇년 먼저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다행히 길이 많고 길을 안내할 가이드들도 많다.

전처럼 길이 꽉 막힌 것은 아니다.

소매 걷어붙이고 요즘은 카페라고 불리는 다방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꼭 먹고마시는 업종이 아니면 어떨까.

오늘도 공장에서 기름때 절은 작업복에 고생하는 소기업 사장들도 많다.

당장 무슨 아이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너무 쉽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라면 이 두려움은 월급쟁이라는 말속에 나 스스로를 묻어왔던
탓도 있을 것이다.

월급을 다시 분석하고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보자.

방법이 있을 것이다.

드넓은 세상이다.

그래서 돈은 낮은 곳에서 흐를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가는데는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알량한 샌님, 어설픈 지식인 근성은 걷어 치우자.

다행히 경기가 바닥이란다.

차라리 이때 뭐라도 시작하자.

경기가 바닥이라면 무엇을 하더라도 호황일 때보다는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준비하고 익숙해지노라면 활황기가 올 것이다.

그래 또하나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다.

다행히 아내도 아직 젊고 두 주먹엔 불끈하는 힘이 있다.

그래 명퇴를 당당히 맞자.

늦게 철이 들어 이제사 바람부는 들판에 나서는 것이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