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곧 낭만입니다.

차 안에 있으면 언제나 이탈리아의 조그만 항구도시 소렌토로가 생각나요.

짙은 주황색의 앙증맞은 차를 몰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가를
달리는 기분, 이보다 더 멋있는 낭만이 있을까요"

성악가 여단열(32)씨는 요즘 차에 푹 빠져 있다.

그에게는 음악 못지않게 소중한 게 자동차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소유하고 있는 차는 국내에서 오직 한대밖에 없는
"피아트 500".

티코보다 훨씬 작은 이차는 이탈리아 피아트가 지난 50년대부터 만들기
시작, 73년 생산을 중단한 모델.

여단열씨가 갖고 있는 차는 피아트가 생산을 중단하기 직전에 만든 72년형
모델이다.

여씨가 이 차를 구입한 것은 지난 93년.

이탈리아 유학도중 한 엔진튜닝 전문가로부터 "잘 보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넘겨받았다.

차령이 올해로 벌써 26년이 넘었는데도 이 차는 만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페인트칠 하나 손상된 곳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여씨가 이 차에 쏟는 애정은 각별하다.

그는 요즘도 가끔 이탈리아를 갈 때마다 이 차의 부품을 조금씩 가져온다.

국내에서는 부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를 몰고 시내에 나가면 재미있는 일이 많아요.

어떤 사람은 계속 뒤따라와 차를 세워놓고 한참동안 유심히 살핀 후
즉석에서 사진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국내 메이커가 내놓은 새차냐"며 구입을 묻는 경우도 있구요"

이 차는 배기량 5백94cc에 2기통 공랭식으로 최대출력 18마력의 힘을 낸다.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여전히 최고시속 90km로 달리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국산차의 평균 수명이 4~5년인 것과 비교하면 놀랄만한 수준이다.

"앞으로도 이 차는 30년이상 더 탈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수명이 다할 때까지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생각입니다"

이탈리아 가곡연구회 회원으로도 활동중인 여씨는 요즘 서울 영등포에
조그마한 스튜디오를 운영중이다.

웨딩뮤직서비스 등 각종 주요행사의 공연을 담당하는 게 주 업무.

올 가을께는 불우이웃돕기 자선음악회와 가을맞이 가곡의 밤 행사를 열
계획이다.

풍부한 경험을 쌓아 독립 오케스트라단을 만드는 게 여씨의 포부.

< 정종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