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북한돕기 운동과 남북관계 .. 김학준 <인천대 총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몇햇동안 북한을 자주 방문하면서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펴 온 한
해외 종교인을 최근에 몇몇 사람들과 함께 만났다.
그는 북한의 형편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지난
연말에 현장에서 찍어 만는 약 20분짜리 천연색 비디오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아, 저럴 수가 있을까.
북한의 식량 위가가 지난 80년대의 저 처참했던 에티오피아 상황보다도
더 심각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인간의 조건"이 저렇게까지 참혹할
줄이야!
비디오에 나오는 북한 주민들은 글자 그대로 풀죽을 먹고 있었다.
들판에 나가 뜯어온 풀을 가마솥에 끓이고 거기에 강냉이를 넣고 삶아
서로 잉겨 붙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나타난 푸르딩딩한 덩어리 비슷한 것을
음식이라고 먹는 것을 보며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동정심을 나누게 됐다.
"더 이상 따질 것 없다.
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어야 한다.
저 사람들이 우리 동포가 아니고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식량을 보태
주어야 할 판이다"
이것이 우리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인발생적이면서도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북한은 지난 정초에 3대 신문의 공동사설 형식을 빌린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풀죽을 먹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갖고 행진하자"라는 말로 주민들의 사기를 북돋고자 했다.
그 신년사를 읽으면서 필자는 "풀죽을 먹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표현을 고난을 강조하는 수사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이었다.
비디오는 북한 동포들이 실제로 풀죽을 먹고 살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저 유명한 "솔로몬의 아기 재판"을 떠올렸다.
서로 어머니임을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현명한 임금 솔로몬이 누가
어머니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문제의 그 아기를 두 부분으로 나눠 각자 한
부분씩 가져가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나고 제의했을 때, 가짜 어머니는
좋아라고 한 반면에 진짜 어머니는 차라리 앙보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자 솔로몬은 양보한 여인에게 아기를 돌려준 대신에 나누자고 한
여인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던가.
아기는 물론 가엾은 북한 동포들이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저렇게 굶주려야 한단 말인가.
나쁜 것은 김정일을 비롯한 극소수 통치자들이다.
그들은 가짜 어머니가 자식이 죽는 것은 괘념하지 않았듯 북한 주민들이
굶거나 죽는 것은 그렇게 문제로 삼지 않고 오직 권력 유지와 체제 유지에
모든 힘을 쏟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선 군사비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 넣고 있다.
최신식 무기들을 끊임없이 사들이는 것이 그 한 보기이다.
최근에는 온 백성이 굶주리는데도 군부는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호전적인 언사들을 희롱했다.
그들은 또 우상화작업에 막대한 돈을 퍼붓는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주체기념탑"과 세계에서 역시
제일 크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김일성동상을 세워놓고도 김일성의 미라를
보존하기위해 호화로운 "금수산 궁전"을 지은데 이어 이제는 그 외곽공사를
다시 한번 호화롭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짓거리는 사이비 신흥종교집단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비이성적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신도들은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한채 뼈빠지게 일하는데도 교주와 그 주변
세력은 더 많은 헌금을 강요하고 더 많은 노력봉사를 강요하면서 신전을
짓고 금상과 은상으로 우상을 세우는 일들을 우리는 때때로 보지않았던가.
우리는 아기를 죽일 수 없기에 차라리 양보하겠다고 한 진짜 어머니가
돼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보내주는 쌀이 군량미로 들어가도 할 수 없다.
우선 저렇게 풀죽이나 먹다 죽어버릴 우리동포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양보하고 보자."
이런 생각이 비디오를 보는 동안 계속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냉정히 "그렇다면 우리에게 과연 솔로몬이 있느냐"
라고 묻게 된다.
"솔로몬의 아기 재판"이 해피엔딩 되게끔 만든 결정적 요인은 솔로몬이라는
현명한 군주였다.
그만큼 슬기로운 임금이 재판을 맡지 않았다면 아기는 죽게 됐거나 가짜
어머니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믿는다.
우리 겨레에게도 솔로몬은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것은 역사의 대세이다.
세계사의 흐름은 이제 분명히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이다.
독재체제와 전쟁, 더구나 북한식의 세습왕조적 독재지배와 군사우선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돕는다고 해서 그 힘 덕분에 김정일중심의 기괴한
병영국가적 왕조체제가 더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일부터 베이징에서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적십자 사이의 대표접촉이
4년9개월만에 다시 열렸으나 합의를 보지못한채 헤어졌다.
비록 그렇게 됐다고 해도 북한의 체면을 살려 장소를 북한이 고집한
곳으로 양보해 주었던 우리의 정신을 앞으로도 계속 살리자.
착한 일은 반드시 보상받기 마련이다.
그렇게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경제협력의 단계로 끌어올려보자.
그러나 북한이 군사비와 우상숭배비를 조금이라도 줄여 그 돈으로 북한
동포들을 제대로 먹이라고 꾸준히 권하는 것을 잊지말자.
남북관계는 매우 중요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파국에 직면하지 않게끔 서로 자제하고 서로 양보하는 가운데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하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3일자).
해외 종교인을 최근에 몇몇 사람들과 함께 만났다.
그는 북한의 형편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지난
연말에 현장에서 찍어 만는 약 20분짜리 천연색 비디오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아, 저럴 수가 있을까.
북한의 식량 위가가 지난 80년대의 저 처참했던 에티오피아 상황보다도
더 심각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인간의 조건"이 저렇게까지 참혹할
줄이야!
비디오에 나오는 북한 주민들은 글자 그대로 풀죽을 먹고 있었다.
들판에 나가 뜯어온 풀을 가마솥에 끓이고 거기에 강냉이를 넣고 삶아
서로 잉겨 붙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나타난 푸르딩딩한 덩어리 비슷한 것을
음식이라고 먹는 것을 보며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동정심을 나누게 됐다.
"더 이상 따질 것 없다.
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어야 한다.
저 사람들이 우리 동포가 아니고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식량을 보태
주어야 할 판이다"
이것이 우리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인발생적이면서도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북한은 지난 정초에 3대 신문의 공동사설 형식을 빌린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풀죽을 먹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갖고 행진하자"라는 말로 주민들의 사기를 북돋고자 했다.
그 신년사를 읽으면서 필자는 "풀죽을 먹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표현을 고난을 강조하는 수사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이었다.
비디오는 북한 동포들이 실제로 풀죽을 먹고 살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저 유명한 "솔로몬의 아기 재판"을 떠올렸다.
서로 어머니임을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현명한 임금 솔로몬이 누가
어머니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문제의 그 아기를 두 부분으로 나눠 각자 한
부분씩 가져가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나고 제의했을 때, 가짜 어머니는
좋아라고 한 반면에 진짜 어머니는 차라리 앙보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자 솔로몬은 양보한 여인에게 아기를 돌려준 대신에 나누자고 한
여인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던가.
아기는 물론 가엾은 북한 동포들이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저렇게 굶주려야 한단 말인가.
나쁜 것은 김정일을 비롯한 극소수 통치자들이다.
그들은 가짜 어머니가 자식이 죽는 것은 괘념하지 않았듯 북한 주민들이
굶거나 죽는 것은 그렇게 문제로 삼지 않고 오직 권력 유지와 체제 유지에
모든 힘을 쏟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선 군사비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 넣고 있다.
최신식 무기들을 끊임없이 사들이는 것이 그 한 보기이다.
최근에는 온 백성이 굶주리는데도 군부는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호전적인 언사들을 희롱했다.
그들은 또 우상화작업에 막대한 돈을 퍼붓는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주체기념탑"과 세계에서 역시
제일 크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김일성동상을 세워놓고도 김일성의 미라를
보존하기위해 호화로운 "금수산 궁전"을 지은데 이어 이제는 그 외곽공사를
다시 한번 호화롭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짓거리는 사이비 신흥종교집단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비이성적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신도들은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한채 뼈빠지게 일하는데도 교주와 그 주변
세력은 더 많은 헌금을 강요하고 더 많은 노력봉사를 강요하면서 신전을
짓고 금상과 은상으로 우상을 세우는 일들을 우리는 때때로 보지않았던가.
우리는 아기를 죽일 수 없기에 차라리 양보하겠다고 한 진짜 어머니가
돼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보내주는 쌀이 군량미로 들어가도 할 수 없다.
우선 저렇게 풀죽이나 먹다 죽어버릴 우리동포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양보하고 보자."
이런 생각이 비디오를 보는 동안 계속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냉정히 "그렇다면 우리에게 과연 솔로몬이 있느냐"
라고 묻게 된다.
"솔로몬의 아기 재판"이 해피엔딩 되게끔 만든 결정적 요인은 솔로몬이라는
현명한 군주였다.
그만큼 슬기로운 임금이 재판을 맡지 않았다면 아기는 죽게 됐거나 가짜
어머니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믿는다.
우리 겨레에게도 솔로몬은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것은 역사의 대세이다.
세계사의 흐름은 이제 분명히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이다.
독재체제와 전쟁, 더구나 북한식의 세습왕조적 독재지배와 군사우선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돕는다고 해서 그 힘 덕분에 김정일중심의 기괴한
병영국가적 왕조체제가 더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일부터 베이징에서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적십자 사이의 대표접촉이
4년9개월만에 다시 열렸으나 합의를 보지못한채 헤어졌다.
비록 그렇게 됐다고 해도 북한의 체면을 살려 장소를 북한이 고집한
곳으로 양보해 주었던 우리의 정신을 앞으로도 계속 살리자.
착한 일은 반드시 보상받기 마련이다.
그렇게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경제협력의 단계로 끌어올려보자.
그러나 북한이 군사비와 우상숭배비를 조금이라도 줄여 그 돈으로 북한
동포들을 제대로 먹이라고 꾸준히 권하는 것을 잊지말자.
남북관계는 매우 중요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파국에 직면하지 않게끔 서로 자제하고 서로 양보하는 가운데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하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