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 왔을때 일행들은 이과수폭포 투어에 나섰다.

그러나 먹은 것을 자꾸 토하던 지영웅이 드디어 호텔방에 드러눕고
말았다.

설사까지 겹쳐서 엄살이 심하다.

김영신은 계속 토하는 그를 두고 일행들과 갈 수가 없어서 투어
가이드에게 말하고 이과수폭포 관광에서 빠져버렸다.

응석을 떨며 고마워하는 그에게, "만약에 내가 아프면 지코치는 나를
호텔에 놔두고 혼자 관광을 가겠어요?"

다정하기가 성모마리아 같다.

지코치는 행복하다.

누워있어도 나는 것 같다.

지영웅은 싱그레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끌어 자기의 침대밑에 앉힌다.

"수녀님 미안해요. 이렇게 단 둘이 있으니까 살 것 같네. 꼭 핑계대는 것
같이 메스꺼웠어요. 나는 엄마가 없이 자라서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생동안 어머니를 찾는 피에로인지도 몰라요. 저를 영원히
이뻐해주세요"

"그럼요. 지코치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한은"

그녀는 따뜻하게 그의 손을 잡으면서 위로한다.

어머니라는 여자들이 이럴 것이다.

지코치는 눈물이 글썽해져서 그녀의 야윈 손을 입술 앞으로 가져다가
부드럽게 키스를 한다.

사랑과 연민이 섞인 지극히 감미로운 키스다.

"꼭 여자들에게 버림만 당해온 사람처럼 굴고 있는것 알아요? 왜 여자를
섹스의 상대로만 생각해요? 그러니까 버림받고 저주받고 그러는 거예요"

"여자들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아니, 저는 착취만 당해온 것 같아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요?"

그녀는 주의깊게 그의 슬퍼보이는 큰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한다.

그러자 지영웅은 자기가 말 실수를 하고 있다고 이성을 가다듬으며
재빨리 자기의 신분을 꽁꽁 숨긴다.

"저 사실은 요, 나는 겁쟁이가 돼서요, 용감한척 한답니다. 그리고
가끔은요, 야수같이 여자에게 덤벼들면서 본래의 용맹성을 회복해보기도
하구요"

그러자 김영신은 그의 정리가 안 된 인격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웃어버린다.

드라이한 세상에서 저렇게 잘 웃는 여자도 있을까? 모든게 신선하게만
느껴진다.

김영신의 웃음은 어린 동생이 용맹을 보여주려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렸을 때의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는 듯한 너그러움과 이해심이 섞인 그런
시선이며 웃음이다.

누구보다도 이해심이 많고 예민한 김영신은 그의 그런 어릿광스러운
자기 과시욕이 하나도 싫지 않고 귀여운 동생의 실없는 짓 처럼 귀엾기만
하다.

둘이 마주잡고 있던 손이 갑자기 뜨겁게 점화되기 시작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