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용

국내경기의 하강국면이 지속됨에 따라 대다수 국내기업이 원감절감
압력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임금동결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까지 펼쳐지고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이며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은 될 수 없다.

시장경제하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 해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적절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원가를 구성하는 핵심요소를 공략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제조업체는 물론 서비스 업체 사이에서 날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첨단구매기법이 바로 전략구매이다.

전략구매가 갖는 매력은 크게 네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대폭적인 원가절감효과이다.

제조업체의 경우 원가의 60~50%는 자재구매에서 발생한다.

하도급업체의 경우 부품구입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일괄품질관리(TQM)및 일괄생산관리(TPM)를 이용한 품질향상 노력을 통해
총 제조원가를 낮출수 있다고 역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제조원가는 총 원가의 15~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말해 제조원가를 10% 낮춘다고 하더라도 원가절감 효과는 1.5~2.0%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총 원가의 70%를 차지하는 구매부문의 원가를 10% 낮춘다면
원가절감효과는 상당히 클 것이다.

게다가 구매부문의 원가절감은 이윤 상승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둘째 신속한 효과가 나타난다.

리엔지니어링은 프로세스 분석에 수개월, 정보기술사업은 시스템 실행에
수년이 걸린 후에 비로소 생산성 향상, 고객욕구 만족등의 결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와 달리 전략구매는 공급업체와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구입물품
선정, 판매업자 물색, 자료요청서(RFI)및 견적 요청서(RFQ) 발송, 협상등
구매에 필요한 일련의 프로세스가 종료된다.

전 과정에 소요되는 기간은 길어야 6개월이다.

따라서 6개월 후면 가시적인 결과를 직접 확인할수 있다.

셋째 노동조합과 충돌할 염려가 없다.

공급업체와 직접 거래를 하며 대부분의 공급업체가 해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국내 노동조합과 부딪칠 일이 거의 없다.

기업 경영진들에게 큰 두통거리인 인원 감축이나 기타 노사문제에 대한
부담을 덜게된다.

한국의 심각한 노사갈등 상황을 감안할때 이점은 특히 중요하다.

넷째 OECD가입및 무역자유화로 인해 전략구매가 훨씬 용이해졌다.

공급업체들은 적극적인 세일즈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구매관련 정보도
그 어느때보다 다양해졌다.

무역장벽이 낮아진 결과 가격만을 기준으로 삼아 각 국의 제품을 비교할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같은 매력을 지닌 전략구매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존의 구매기법과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전략구매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구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협상능력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전략구매란 구입물품 선택, 공급업체 선정, 포괄적인 등급체계 개발 등
일련의 프로세스를 전략적 체계적으로 계획한 후 실행하여 구매업체및
공급업체 모두에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구매기법이다.

전략구매를 통해 구매업체는 새로운 가치 창출 효과를, 공급업체는
매출신장및 구매자와의 지속적 관계수립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전략구매는 총체적 라이프사이클 컨셉트를 채택한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구매가격 컨셉트와 달리 전략구매방식은
공급업체가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최대한 활용하여 가치창출 및 증대를
도모한다.

기업의 구매담당 부서는 온갖 비리 의혹과 풍문의 대상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외국기업의 경우도 고위 경영진이 수뢰혐의로 기소된 예를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구매부는 또한 대규모의 자금거래가 이루어지는 부서이기도 하다.

필자는 고객들로부터 한국기업의 구매제도 발달과정및 현 실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다른 국가에서, 다른조직
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곤 한다.

이제까지 구매부문의 효율및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사, 검토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로는 크게 네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한국기업의 경우 대부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부 외국기업도
포함, 경제적인 기준보다는 인맥을 통한 구매 방식이 주류를 이룬다.

개인적인 안면이나 친분관계가 구매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국기업이 후보업체를 평가, 최종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서구 기업들이 객관적 기준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한국 기업은 주관적
해석에 의존한다.

둘째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국내 공급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국내업체와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을 고집해서는 공급업체 베이스를 강화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본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핵심역량(core competence)개발및 기술경쟁력
향상을 이룩하고 있는 기업들은 재벌의 보호막에 싸여있는 한국 기업들이
아니라 일본 기업에 납품하는 공급업체들로 나타났다.

자국기업 "육성"이라는 낡은 사고방식에 얽매여 있는 공급업체들은
경쟁력약화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공급업체는 물론 국내기업 모두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셋째 구매전문인력들은 대부분 구매부한 곳에서만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이다.

구매부는 기업내에서 인력이동이 가장 적은 부서이다.

따라서 구매부는 수구세력들의 집합체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해외로부터
아이디어나 자원의 유입도 거의 없기때문에 기존의 구매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리저리 옮겨다니지 않고 한 직장에 머무르는 풍토로
인해 다른 기업의 구매방식에 대해 알수 있는기회가 없다.

따라서 벤치마킹을 한다하더라도 자료의 원천이 하나뿐이다.

그 하나의 원천이란 바로 자기 기업이다.

상당수 기업이 지난 수년동안 구매제도에 관한 루머나 구매부 직원의
직권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21세기 기업 경영에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시대에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만족스런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공급업체가 제공받는 "가치"가 아니라 "가격"이 구매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전자문서교환(EDI)및 기타 전자상거래 방식을 이용한 계약
체결및 상품 인도가 실현됨에 따라 기업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기능이 자동화
되었다.

따라서 구매부의 역할에도 변화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포드를 포함한 몇몇 기업은 부품품질관리(Parts Quality Program)개선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GM은 "전략구매"를 채택해 재기에 성공했다.

GM은 잭 스미스 회장을 주축으로 하여 구매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한
결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한 탄탄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최고의 가치를
창출하는 공급업체를 발굴하여 지속적인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

그 결과 지난 5년동안 구매부문에서 발생하는 원가의 11%를 줄일수
있었다.

이는 GM 자동차 가격의 인하로 이어져 고객들도 직접 원가절감효과를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전략구매를 통한 절감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는 은행
신용카드회사 보험회사등 금융업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총 원가의 35%를 줄였고 프루덴셜 바셰역시
괄목할만한 원가 절감효과를 거두었다.

은행에서 주로 구매하는 품목은 컴퓨터와 서류용지이다.

은행들은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거나 기존컴퓨터를 보수하는 데
수백만달러를 쏟아붓는다.

이 경우 EDS와 같은 아웃소싱 전문업체를 통하면 정가의 60~70%까지
할인된 가격에 컴퓨터 등을 구매할 수 있으며 서류용지 표준화를 통해
원가를 낮출 수도 있다.

한국기업들은 전략구매가 한국 풍토에서는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이란
이유를 들어 도입을 꺼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한 대기업은 전략구매를 통해 이미 27%의 절감 효과를
거둔 바 있다.

한국에서 전략구매가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이유 중 한 가지는 한국의
공장들 대부분이 일본기업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현재 사용중인 기술은
해외에서 직접 도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동차공장, 화학공장등 90%이상의 공장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 결과 부품도 대부분 공장을 건설한 기업에 의해 제조되었다.

일단 공급업체 명단이 작성되어 한국기업들에 이 명단이 배포되면 기업의
구매부서는 이 명단을 교과서처럼 받아들인다.

이는 기술이나 노하우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지난 5년동안 데이터베이스를 미처 수정 보완할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무역장벽이 허물어졌다.

그 결과 완전에 가까운 무역자유화의 실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품질과 서비스가 같다는 전제하에 세계 어느 곳의 그 누구와도
거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몇 푼을 절약하기 위해 품질을 희생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원가와 품질이라는 두가지 잣대를 놓고 이 둘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문제는 한국 기업은 국제 무대의 경쟁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매기업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공급업체의 중요성도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대부분 예산부족및 언어장벽 등 여러가지 이유로 정기적인
해외공급업체 시찰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공급업체를 선정할 때 가격을 유일한 평가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전략구매는 관리 구매 운영 엔지니어링등 기업이 수행하는 모든 기능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개념이다.

전략구매는 이러한 기능을 적절히 통합함으로써 공급업체가 갖는
핵심능력을 기업운영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전략구매야말로 모든 기업이 이익증대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오늘날과 같은 기업환경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전략구매의 효과는 신속하게 나타나며 기존의 기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