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불기시작한 감량경영 바람은 산업현장 곳곳을 휩쓸며
샐러리맨들을 고용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일반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금융 유통업등으로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명퇴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는 얘기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본인이 제발로 나가지 않는한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인기직장이었던 은행이나 공기업도 더이상 고용안전지대가 아니다.

모든 업종, 지위를 막론하고 감원바람이 삭풍처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감원은 주로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선경인더스트리의 경우 지난해 명예퇴직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기업이다.

지난해 이회사는 1천여명을 감원했으며 이가운데 명예퇴직자는 9백여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유리도 지난해 전체 직원의 25%인 5백여명을 명예퇴직시켰다.

제조업에서 발원한 감원바람은 은행과 공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울은행은 이달중 6백여명을 명예퇴직시킬 예정이고 국민은행도 올해초
5백20명에 대해 명퇴를 시킨 상태이다.

또 제일 조흥 한일등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경영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감량경영을 단행하고 있다.

J은행의 이모대리(35)는 "금융개방으로 98년부터 외국은행들이 진출하면
외국은행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합병이 불가피하다"며 "합병되면
기존 인력의 수십퍼센트가 감원된다는 시나리오가 나돈다"고 하소연했다.

평생고용은 커녕 이제 "반생고용"도 유지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월급 몇푼 덜 받아도 한번 입사하면 평생직장으로 알고 회사발전을 위해
헌신하던 "일편단심"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의 순진무구한 "애사심"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S전자의 김모부장(45)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수 없다.

경기불황이 계속되면 고용조정은 피할수 없게 되고 내가 살생부에 오르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고 반문했다.

실직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샐러리맨들의 심정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평생고용이 "지나간 추억"이 돼 버렸다는 것은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3월까지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등으로 물러나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모두 4천6백59명.

지난 한해동안 1만4백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명예퇴직의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명예퇴직은 평생고용체제의 마감을 알리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노동법개정에 정리해고제가 법제화됨에 따라 고용불안심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비록 정리해고가 2년 유예되긴 했지만 법제화가 갖는 심리적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그나마 명퇴자들은 조기퇴직의 대가로 수년치의 봉급을 위로금조로 퇴직금
에 얹혀 받은게 사실이다.

그래서 명퇴를 시행하는 회사 직원들 사이에 "사직당하는 것은 억울하지만
그래도 할만하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명퇴신청을 받으면 일부회사에서 예상인원을 넘는 것도 바로 이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리해고제 도입으로 앞으로 이같은 "잔치"도 막을 내리게 됐다.

기업들이 더이상 퇴직자들에게 "호의"를 보여주지 않아도 퇴직을 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우니나라는 경제개발이후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실업이라는 고통에
직면하고 있다.

"안정된 직장"이라는 말도 어찌보면 사라질 상황에 처해 있다.

평생고용의 대명사인 "철밥그릇"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이주호박사는 "현재의 실업사태는 단기적인 경기침체보다
는 성장활력이 떨이진데 따른 구조적 실업"이라며 "따라서 대증요법으로는
치유불능의 상태"라고 진단했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