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측과 북한적십자회측이 3일 오후 북경 쌍글리아호텔에서
적십자대표 회담을 갖기로함에 따라 4년9개월동안 중단됐던 "적십자 채널"
이 다시 가동된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측은 이번 접촉을 그동안 중단돼온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계기로 만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적십자대표 접촉이 성사되기까지 양측이 장소문제를 놓고 10여일
이상 신경전을 벌인 사실이 말해 주듯 이번 적십자 대표접촉의 결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게 현실이다.

우선 회담의 주의제부터 양측의 이견이 예상된다.

강영훈 한적총재의 제의문에서 나타나듯이 우리측은 이번 회담의 목적이
민간차원의 대북지원 절차문제를 협의하는 자리이므로 여기에 적합한
의제만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측은 지난 84년 수재물자 인도시 북한측이 지원물품과 규모,
시기 등을 밝혔다는 점에서 우리측에게 지원물품의 규모와 시기등에 대해
사전에 확약해 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 문제가 되는 것은 직접제공에 합의할 경우 종전에 국제적십자연맹이
맡고 있던 분배의 투명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이다.

지난 95년 지원된 15만t의 쌀중 일부를 북한당국이 군량미로 전용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우리측은 민간차원의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한적요원이 직접 대북지원물품이 분배되는
과정을 모니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북한측의 입장을 고려, 최소한 북한에 상주하고 있는 국제적십자사연맹
(IFRC)이나 세계식량계획(WFP)등 국제기구 요원을 통해서라도 분배과정과
그 결과를 감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기구의 북한식량실태조사단에 우리측 요원 참가를
완강히 반대했다는 점과 지난 84년에도 북측이 수해지역방문을 요구했으나
우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동의에 이르기까지
곡절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원물품의 원산지 표시문제 역시 걸림돌 중의 하나이다.

우리측은 향후 민간차원의 대북지원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원자와
지원물품에 대한 명확한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측은 한국에서 상당량의 물품이 지원됐다는 사실이 그대로
알려지면 내부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지난 84년에 원산지 표시문제에 대해 양측이 어떤 합의도 한
바 없다는 점을 내세워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끝으로 인도.인수 장소와 방법상의 문제가 남아 있다.

한적은 해로만을 이용할 경우 수송비 부담이크고 일부 품목은 아예 지원이
불가능할 뿐만아니라 물품전달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강조, 판문점을
이용해 수시로 전달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현재 열려있는 인천 남포항 노선의 경우 동해안 지역에 대한 지원에
많은 어려움이 있으므로 속초 원산항등의 해로를 추가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측은 그러나 한반도 정전협정체제 불인정 방침에 따라 판문점을 남북
교류의 장소에서 배제하고 있고 또 북한의 내부실상이 남한측에 알려지기를
꺼린다는 점에서 판문점을 통한 전달이나 추가 항구개방에 선뜻 응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