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정책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건중의 하나가
일관성이다.

아침저녁으로 뒤집어지면 정책을 믿고 따르는 기업이나 가계는 엄청난
피해를 당하게 된다.

어찌보면 정책의 내용보다도 일관성이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더 좌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관료가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체제에선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물론 정부도 예측능력에 한계가 있고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미 발표한 정책을 중간에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엔 정책을 바꾸게 된 경위를 소상히 알리고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주어 경제주체들이 변화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게 상식이다.

만일 반년전에 발표한 정책을 시행 하루전에 백지화하겠다고 불쑥
발표한다면 곡절이야 어떻든간에 그것은 대국민 기만이다.

기업과 백성을 우습게 보는 우민정치에 다름아니다.

재정경제원의 "콜중개한도제 폐지"결정이 바로 그같은 사례다.

재경원은 지난해 11월 증권사 및 종금사 등에 대해 올 5월1일부터 콜차입
규모를 자기자본의 50%이내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비은행금융기관이 콜자금을 쓰지 않을 경우 콜금리가 내려가고 이에따라
장단기금리도 안정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시행을 하루앞둔 30일 재경원은 완전히 정반대의 이유를 대며 당초계획을
"없었던 일"로 한다고 발표했다.

콜중개한도제를 시행할 경우 콜자금을 필요로 하는 비은행금융기관들이
직거래를 통해 콜자금을 차입함으로써 기업의 어음할인 금리가 올라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된다는 설명을 달았다.

금융총괄심의관과 금융정책과장은 "이번 결정으로 손해를 볼 기관은
아무도 없다"고 한술 더떴다.

정말 피해가 없을까.

콜중개 제한에 대비해 환매조건부채권 매매를 늘리는 등 차입수단 다양화를
시도해온 2금융권의 노력은 공연한 헛수고가 돼버렸다.

피해는 그렇다 치자.

정책마저도 이지경으로 "부도"를 내니 앞으로는 정책을 한번 발표하면
중간에 "예정대로 시행한다"는 중간확인을 해주어야 마음이 놓일 판이다.

최승욱 < 경제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일자).